2008/05/01 14:01
eπi+1=0
e를 π와 i 를 곱한 수로 거듭제곱하여 1을 더하면 0이 된다.
나는 다시 한 번 박사의 메모를 쳐다보았다. 한없이 순환하는 수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하늘에서 π가 e곁으로 내려와 수줍은 많은 i 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오일러의 공식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유성의 빛이었다. 어둠의 동굴에 새겨진 시 한 줄이었다. 거기에 담긴 아름다움에 감동하면서 나는 메모지를 다시 정액권 지갑에 집어넣었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문득 뒤돌아보았지만 수학 코너는 여전히 한산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숨쉬고 있었다. ...
[박사가 사랑한 수식] 중에서, 오가와 요코, 김난주 옮김, 이레, 2004
최근에 전산을 전공하신 윗분(이 분도 박사)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대화의 주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야 전체적인 줄거리와 인상적인 대화, 우애수 정도만 기억이 났는데 이 분은 전공이 전공이신지라 오일러 공식을 잘 표현한 것을 말씀 하시더라구요. 강의실에 들어온 수학교수님이 이 공식을 쓰고 한참을 보다가 "아름답지 않냐?"고 동의를 구했던 기억이 나신다면서요. ^^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했습니다. ;-) 옮겨 적으면서 다시 봐도 모를 이야기지만 ( ..) 그래도 감동은 변하지 않네요.
p.s.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학 코너처럼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숨쉬고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분명 넘치도록 있다는 생각에 급 우울해졌어요. ㅠㅠ
p.s. 한없이 순환하는 e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엇지님의 자연수 e 이야기도 참조해주세요~ (하지만 읽어도 잘 이해가...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