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4 13:12
... 그러나 커다란 불행이 찾아온 건 휴식시간이 지나고 첫 번째 곡목이 연주되던 도중이었다. 그 곡은 기다란 쇼팽의 소나타였다. 첫 번째 악장이 천둥치듯 지나갔고, 두 번째 악장이 갑자기 활기를 띠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악장이 연주될 때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마호니 씨는 발을 톡톡 두드리며 따라갔다. 중간에 슬픈 왈츠곡과 함께 장엄한 장송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장송 행진곡이 끝날 무렵 마지막으로 심금을 울려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피아니스트는 손을 치켜들고 피아노 의자 위에서 몸을 다소 뒤로 젖히는 시늉까지 했다.
마호니 씨는 손뼉을 쳐댔다. 음악이 끝났다고 전적으로 확신했으므로 기세 좋게 여섯 차례 정도 손뼉을 쳤다. 그러나 자기 혼자 손뼉치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지도록 알아차렸다. 호세 이투르비는 날렵하게 악마와 같은 열정으로 또다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댔다.
마호니 씨는 고통스러워 뻣뻣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 이후로는 그의 기억속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들이었다. 관자놀이의 빨간 혈관들이 부풀어올라 거무스름한 빛을 띠었다. 그는 과오를 범한 두 손을 넓적다리 사이에 놓고 꼭 잡고 있었다.
아내만이라도 남몰래 신호를 보내어 위안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감히 아내를 향해 눈길을 돌려보니 아내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얼어붙어 있었고 필사적으로 시간을 무대로 집중하고 있었다. 부단히 계속되는 수치스러운 순간들이 얼마 동안 흘러간 후 마호니 씨는 머뭇머뭇 크레이프 천으로 덮인 아내의 허벅다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마호니 부인은 남편에게서 다리를 멀찍이 옮기더니 두 다리를 꼬았다.
마호니 씨는 거의 한 시간 동안 이런 공개적인 치욕을 참아내야 했다. 한번은 팁 메이베리의 시선을 느끼면서 익숙지 않은 사악한 마음이 부드러운 그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팁은 '슬릿 벨리 블루스'에 나오는 소나타를 한 곡도 알지 못했지만 점잖게 앉아 이었으므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다. 마호니 부인은 고뇌에 찬 남편의 시선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호니 부부는 파티에 참석해야 했다. 오로지 그것만이 적절한 행위임을 알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것으로 차를 몰았다. 마호니 씨가 할로 씨 집 앞에서 자동차를 멈추었을 때 그 아내가 말했다. "분별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박수칠 때까지 박수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잖아요."
[불안감에 시달리는 소년] "예술과 청부업자 마호니 씨"중에서, 카슨 매컬러스, 이소영 옮김, 열림원, 2008
카슨 매컬러스가 누군지 잘 모르고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단편집.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지만 환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우리의 일상 이야기는 분명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들이 나오는 독특한 소설이었습니다. 위에 밑줄 그은 부분은 마지막에 실려 있는 단편 "예술과 청부업자 마호니 씨"중에 한 부분인데 끝부분의 처리도 산뜻한 것이 인상적으로 옮겨 봤습니다. 4악장은 1분밖에 안되는데 쫌 만 더 참으시니 마호니 씨... 하는 안타까운 마음. 중학교때 주번일지 갖다 놓으려고 교무실문을 벌컥 열었더니 교직원회의를 하고 있어서 선생님들이 모두 저를 쳐다보시던 악몽같은 기억이 떠올랐답니다. ^^ 참고로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카슨 매컬러스는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했지만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가던 길에 등록금을 잃어버려서 음악가의 꿈을 포기하고 글쓰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고 하네요.
p.s. 딴 이야기지만 음악회에서 악장 사이의 박수가 없기를 바라기 보다는 중간에 떠드는 아이들이나 없었으면... 할 정도로 기대치가 낮아졌어요. ㅠㅠ 아래는 번역본 표지. 표제작인 "불안감에 시달리는 소년"과 무척 잘 어울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