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2 00:45
이노우에 아레노의 소설을 읽으면 이노우에 아레노 병에 걸린다. 증상을 말하자면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것. 평소에 나는 뭔가를 깊이 생각하거나 하지 않는데, 그녀의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이나 다 읽은 후에도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성가신 것은 내가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인데, 그러면서 왠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불안감과 더불어 그런 감정과는 모순된 편안함을 느낀다.
굳이 설명을 시도해본다면, 신간인 [어쩔 수 없는 물]을 읽었을 때 나는 느낌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떤 등장인물(들)에 대해 독자가 '느낌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필연적으로 다음에는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멍하니. ...
[어쩔 수 없는 물]에 대한 에쿠니 가오리의 추천사 "이끌리고 취해버리는 매혹적인 소설" 중에서
전혀 작품에 대해 모르고 펼쳐들어 읽은 부분이 첫문장인 "어제, 나는 아키코를 때렸다."였습니다. 호기심을 느껴 그대로 첫작품을 읽고 나서 아 이런식으로 끝을 내버리면 곤란하잖아... 하면서 이어지는 단편들을 읽으면서 한숨을 쉬고, 5번째 단편의 결말을 보면서 경악하다가 마지막 단편을 읽고 나서 아쉬움과 안도의 느낌을 함께 갖게 되었습니다.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지만 본문에 밑줄 그을 만한 부분을 찾다가 포기하고는 책 말미에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추천사를 대신 옮겨 적어 봅니다. 수영장이 있는 한 피트니스 클럽을 중심으로 직원과 회원들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생각들이 무심한 듯 펼쳐지는 연작소설 6편이 실려 있는 작품집인데 옮긴이의 말 처럼 "도저히 '재미있어' 한 번으로는 너무나 재미있어 미칠 것 같은 이 마음이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물론 재미의 기준이 각자 다르다는 면을 고려한다면 좀 성급한 결론이겠지만, 소설을 읽고 나서 추천사처럼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원하시는 분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다른 작품도 출간되었으면 좋겠네요.
p.s. 번역본과 원서 표지. 문고판 표지인 2번째 원서표지가 맘에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