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6 22:37
"나는 말이야, 요즘 곰곰이 생각해……."
마유즈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계속 말했다.
"서른을 넘기면 더 이상 친구는 만들지 못해. 일하는 파트너야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신뢰할 수 있는 놈들도 있지만 역시 친구는 아니지. 서로 유치하고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니까. 결국은 이십대까지야. 그때까지 만난 놈들이 친구야."
마유즈미가 이 말을 하고 싶어 여기에 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가방" 중에서, [그늘의 계절], 요코야마 히데오, 민경욱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이 부분을 읽다보니(위 밑줄은 책 뒷표지에도 있습니다~) 예전 대학OT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 떠올랐어요. 대학교 때 친구와 고등학교 때 친구에 대한 것이었는데 딱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렀던 것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이야기. 그런데 그게 30대로 확장이 되었네요. ㅜㅜ 뭐 나이 많으신 분들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니 전혀 아닌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고 -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책에 수록된 "가방"이라는 단편의 주인공 쓰게는 경찰학교 동기인 마유즈미에게 이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만 얻어서 슬픔이 담긴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는 마유즈미로부터 도망치듯 자리를 피합니다. 역자의 말에서 잘 그리고 있듯이 이 소설은 "출세가 뭔지, 승진이 뭔지 사람들끼리 속고 속이며, 그것을 파헤쳐야 하는 이들조차도 그 굴레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살풍경"을 담담하고 냉철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 살풍경 안에 마유즈미도 있고 쓰게도 있고, 느슨한 4편의 단편을 묶어주고 있는 주인공격인 후지와타리에게도 있는 셈이죠. 그래서 어쩌란 말이얏! 하고 화를 내는 사람들에게 요코야마 히데오는 뭐 그렇더라도 사람들에게는 이런 구석은 있는 법이지... 하고 조용히 위로를 해줍니다. 쓰게가 단편 마지막에 아들에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 말도 그런 작은 위로 중 하나인 셈이지요. 요코야마 히데오의 다른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으셨던 분에게는 당연히 추천,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같은 번역가의 작품~) 같은 소설 또 없나 하시는 분에게도 여기요! 하고 권하고 싶습니다.
p.s. 번역본과 원서 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