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9 23:12
아셀방크는 다시 잠이 들었다. 패터슨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렸다. 그의 아버지가 질색을 했을게 틀림없는 책이었다. 책갈피마다 아버지의 과거와 관련된 내용이 어김없이 등장했으므로. 책 속에서 늙은 에스키모 메스토코쇼는 사냥하기에는 기막히게 좋았던 시절인 1930년대를 회상했다. 그땐 아티코낙 호숫가에 사슴들이 떼로 몰려 다녔고, 멀리서도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걸 보고 사슴들이 한데 모여 있다는 걸 알 정도였다.
메스토코쇼는 그 사슴들을 뒤쫓을 땐 반드시 눈밭을 소리나지 않게 걸어야 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난 말이오, 진짜 사냥은 침묵 속에서 이뤄지는 법이라고 배웠소. 훌륭한 순록 사냥꾼은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오. 스키스쿠터 소리가 얼마나 시끄럽소. 그러니 스키스쿠터로는 순록을 잡을 수 없는 거요. 이제 나는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을뿐더러 할 수 있다 해도 하지 않을 생각이오. 하지만 나는 훌륭한 사냥꾼이었다고 자부하오. 필요 이상으로 잠을 잔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필요 이상을 자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삶을 꽉 차게 사는 비결은.
[남자 대 남자]중에서, 장 폴 뒤부아, 김민정 옮김, 밝은세상, 2007
[프랑스적인 삶]의 자극적인 줄거리 요약을 알고 있었지만 딱히 끌리지 않아 읽지 않고 있다가, 작가의 다른 작품을 먼저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 [남자 대 남자]를 읽어보았습니다. 평소 프랑스 소설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오호 재미있는걸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잘 모르겠더군요. 특히 마지막 장면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ㅠㅠ 몸이 약하고 항상 병을 달고 사는 50대 주인공 아셀방크가 예전에 자신을 떠난 아내 안나를 찾아 캐나다로 떠납니다. 아셀방크는 그곳에서 안나와 함께 살었던 식물학자 사이슨와 아셀방크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동년배의 사냥꾼 패터슨을 만납니다. 폭설로 아셀방크가 패터슨의 집에 발이 묶이면서 이야기는 아내 찾기 이야기에서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바뀌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설속에서 영화 [하나비]와 [아귀레, 신의 분노] 이야기가 주인공의 상황이랑 적절하게 섞여서 묘사된 장면이었습니다. 장 폴 뒤부아의 다른 작품도 읽어볼 작정인데 잘 이해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p.s. 늘 "필요 이상을 잠을" 자기 때문에 뜨끔해서 밑줄 그은 부분. 제가 삶을 헐겁게 사는 원인을 알게되었어요. 흑흑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원서표지가 훨씬 소설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