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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우기기

flipside 2023. 5. 16. 18:59

2009/03/23 23:40

 

... (과거에는) 나쁜 짓을 하다가 적발당하면 일단 잘못했음을 인정했다. 그런데 달라졌다. 요즘 학생들은 사실 그 자체를 부인한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교사와 학생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런 일 없다"고 아무렇지 않게 부인한다. 이런 우기기 태도가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퍼졌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이런 일이 유행하고 있다고 미디어에 오르내리지도 않았다. 극히 짧은 시간에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하나같이 우기기를 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이 최근에는 어른 세대에게까지 퍼졌다. 1980년대에 고등학생이었던 이이들이 지금은 40대의 어른이 되었을 터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 유효성을 경험적으로 실증한 교섭술을 현재에도 다양한 사회관계에서 활용하고 있다.
  뇌물사건을 일으킨 기업의 책임자가 해명하는 뉴스를 흔히 보게 된다. 대개는 처음에는 "소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언급할 수 없습니다."라고 무뚝뚝한 답변을 한다. 고발당하고 나서는 "그런 사실이 있다고 들어보지 않았습니다."라고 일축한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면 한발 후퇴하고, 하나씩 죄를 인정하다가 막판에 가서야 "죄송합니다."라고 하면서 머리를 숙인다. 이런 과정을 텔레비전에서 지겨울 정도로 봐왔다. 조직의 신뢰성을 속히 회복하기 위해서도 법에 불필요한 수고를 끼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사죄하면 될 것을 어째서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지 의아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들로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어릴 적부터 확고한 증거를 들이대며 비행을 추궁해도 하지 않았다고 버티는 일부터 협상이 시작된다는 것을 습관화해 왔기 때문에 다른 대응은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하류지향]중에서, 우치다 타츠루, 박순분 옮김, 열음사, 2007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듯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