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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사와리

flipside 2023. 5. 16. 19:06

2009/04/21 00:00

 

... 일본의 전통악기에는 음색에 일부러 잡음을 발생시키는 '사와리'라는 기법이 있는 모양이다. 샤미센으로 말하자면, 중국에서 건너온 삼현을 개조해서 한 현이 진동해 잡음을 내게 만든 것이라 한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곤도 미스터리에 흐르는 샤미센 선율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소설이 엮어내는 연애는 플라토닉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음탕하다. 순수함만이 아니라 살의와 증오를 띄어, 어딘가가 결정적으로 일그러져 있다. 그러나 연애의 선율은 살의라는 사와리를 얻음으로써 비로소 드높이, 경쾌하게 울리리라. 순애 같은 단음單音은 야만의 극치. 사랑과 증오가 밀접하게 혼합된 샤미센 소리의 잡음성에야말로 멋이 깃드는 것이 틀림없다. ...


다카키 히로시의 [얼어붙은 섬] 작품해설 '누구를 위해 현을 울리나' 중에서, [얼어붙은 섬], 곤도 후미에, 권영주, 시작, 2008




줄거리를 보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바로 연상되었습니다. 8명이 한 무인도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설정. 그 중 한 명이 죽으면서 연쇄살인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보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첫장을 넘기면서 이 소설이 미스터리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한창 타올랐던 둘의 사랑이 조금씩 꺼져가기 시작할 무렵, 모든 것이 한꺼번에 꿈틀거리며 뜨겁게 얼어붙기 시작했다."는 뒷표지의 문구를 다시 보면서 위에 밑줄 그은 평론가의 지적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과 증오가 밀접하게 혼합된 샤미센 소리의 잡음성이라는 표현이 참 소설을 설명하는데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역자의 말처럼 "작품에 관해서 무슨 말을 해도 스포일러가 될 위험"이 있어서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는 것이 아쉽네요. 미스터리가 지닌 구성이나 결말처리도 좋지만 1993년 작품이기 때문에 그 이후 나온 많은 미스터리에 익숙한 분들에게 그다지 신선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번역본 표지는 알료샤 http://www.giggig.com  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인데 소설과 잘 어울립니다.



추가 : 점점 소설에 대한 것과 멀어지지만 '사와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옮겨봤습니다.


... 이처럼 일본인들이 샤미센의 음색에 대해서 상당히 각별하게 생각하여 자신들의 기호에 가장 어울리는 음색을 내는 악기를 만들어 왔다. 샤미센은 중국의 산시엔(三絃)이 오키나와의 산신(三線)을 거쳐 본토에 들어온 것인데, 산시엔이나 산신과는 다른 샤미센의 특징은 뱀가죽이 아닌 고양이 가죽을 사용하는 점, 비와와 비슷한 바치(撥)를 사용하는 점, 그리고 ‘사와리’소리가 있다는 점이다. 바치소리와 사와리소리는 음색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바치소리는 바치가 샤미센의 몸체 가죽에 닫는 음을 말하는데, 기다유부시, 나가우타, 쓰가루(津輕)샤미센에서 특히 눈에 띄게 나타난다. 이 경우 샤미센은 현악기인 동시에 타악기적인 효과를 내고 몸체 가죽과 바치가 부딪히면서 조음(噪音)이 발산된다. 이러한 바치에 의해 몸체 가죽을 치는 주법은 샤미센의 원류인 중국의 산시엔이나 오키나와의 산신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조음의 음색을 애호하는 일본인의 미적 감각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와리는 샤미센 목 윗부분의 튀어나온 곳에 제1현이 닿으면서 내는 마찰음을 말한다. 연주되면서 나오는 원래의 음고와 이 마찰음이 동시에 울려 복잡한 음색을 발한다. 사와리가 추구하는 음색은 샤미센보다 훨씬 이전에 수입된 비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와의 현이 울리면 그 현이 괘(지, 柱) 끝에 스쳐 진동하는데, 그 미묘한 잡음적인 효과를 일본인은 잊을 수 없어서 새롭게 수입된 샤미센에 그것을 응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


출처 : '일본의 공연예술미학',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