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16 00:10
... 4시가 넘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하로 내려가 금고 문을 연다. 얇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지퍼를 연다. 안에는 라텍스 장갑과 알코올, 면봉이 들어 있다. 작은 주머니에 깨끗한 주삿바늘과 수술용 튜브, 사용하지 않은 링거백 두어 개를 챙겨 넣는다. 금고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운 후 주머니를 재킷에 쑤셔넣는다. 몇 시간 후, 동이 틀 때까지 피를 걷으려 돌아다녀야 한다. 내일 밤, 데일 호드를 추적하려면 기력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규칙이 있다.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그 규칙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
1) 사는 동네에서 사냥하지 말 것
2) 욕심 내지 말 것
3) 잔인하게 죽이지 말 것
4) 나중에 눈치 챌 만한 사람은 피할 것
5) 같은 사람을 두 번 이상 노리지 말 것
6) 허락 없이 클랜 구역에서 사냥하지 말 것
7) 증인을 남기지 말 것
이 규칙들을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다. 먹는 자리에서 볼일 보지 말 것. 하지만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
[이미 죽다] 중에서, 찰리 휴스턴, 최필원 옮김, 시작, 2009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이 나던 뱀파이어를 만나다가, 해만 뜨면 피부를 태우는 자외선 단파를 피해 두건을 두르고 면장갑과 썬글래스를 끼고 중동지역 사람들처럼 베일까지 뒤집어쓰고 외출을 하는 주인공 뱀파이어를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언제부턴가 햇빛 정도는 능히 이겨내고 성수(聖水)를 두려워하는 것은 옛날이야기라고 외치는 뱀파이어들이 나오는 소설, 영화만 접하다가 이렇게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뱀파이어가 나오는 소설을 봐서 그런지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주인공 조 피트는 뉴욕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 갖고 있는 뱀파이어 클랜들 사이에서 일거리를 맡아 처리하는 프리랜서 사립탐정. 어느 클랜에도 속해있지 않은 그에게 가장 큰 클랜인 코얼리션이 사건을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소설의 전개는 빠르고 주인공은 매력적 유머가 넘치며 사건이 흘러가는 방향과 해결 방식도 적절합니다. 뱀파이어와 좀비, 좀비균의 보균자, HIV 감염인(피트의 애인인 이비가 감염인이에요)이 등장하기 때문에 복합적인 의미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저는 이런 것을 모두 떠나서 소설적인 재미만으로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5부작의 첫작품으로 앞으로 후속작품도 번역되길 기대하며, 읽으실 분은 아래 옮겨적은 작가와의 인터뷰를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유비무환! : -)
어떤 분들이 [이미 죽다]의 독자가 되리라 생각합니까?
유비무환이라죠? 눈물이 솟구치는 로맨틱한 뱀파이어 연애물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둡니다. 노골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처음 열 페이지부터 뇌를 먹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p.s. 번역본 표지는 원서표지를 그대로 가져온 거인데 맘에 쏙 듭니다. 특히 아래 송곳니 부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