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6 16:46
... 하지만 마키히토는 알고 있다. 기마코가 말하는 성공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지만 뭔가를 하고 싶다고 바라고 그것을 실현할 때는 이상할 정도로 타인이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식속에서 타인이라는 개념이 몽땅 싹 빠져버리면 남는 것은 이제 자신밖에 없다. 자신이 무엇을하고 싶은가밖에 없다. 누가 바보인지, 누가 실력이 부족한지, 누가 연줄로 득을 보았는지, 누가 이해해주지 않는지. 누가 자신보다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 정말로 머릿속에서 깡그리 사라져버린다. 그것은 구석구석까지 햇볕이 드는 광대한 들판에 서 있는 듯한, 상쾌하지만 허전한, 오줌을 지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동안에는 그 들판에 결코 가닿을 수 없고 들판을 볼 수 없다면 원하는 것을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다. 올해 서른 세 살이 된 마키히토가 단 한 가지 깨달은 진실이었다. 연애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애인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았을까? 어떻게 하면 말로 관계를 고정할 수 있을까? 기마코와 자신의 관계는 무엇일까? 등등 무엇 하나 알지 못하는 마키히토가 단 한 가지 아는 진실이었다. ...
"박쥐"중에서, [굿바이 마이 러브], 가쿠타 미츠요, 안소현 옮김, 소담출판사, 2012
[대안의 그녀]의 작가 가쿠타 미츠요의 연작 단편소설집. 장편도 대단하지만 단편에서도 빛을 발하는 작가인듯. 위의 밑줄은 한때 이름을 날리는 밴드 리더였던 마키히토가 성공에 대해 말하는 부분으로 애인인 연극배우 기마코가 성공을 말하며 자신보다 어린 후배를 헐뜯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 부분입니다. 이 단편집은 한 단편의 상대가 이어지는 단편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첫 단편이 A와 B의 이야기라면 두번째는 B와 C, 세번쨰는 C와 D... 이렇게 전개되는데 이런 구성 때문에 금방 다음 편을 읽게 되더군요. 단편이지만 전체적으로 7편 단편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고, 세부적인 심리묘사는 감탄할 정도입니다. 가쿠타 미츠요 팬들이라면 매번 하는 말처럼 당연히 좋아하실 만하고, 탄탄한 연작단편 찾고 계신 분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p.s. 찾아보니 [yom yom]에 2007년~2008년 연재했던 작품을 모은 것이네요. 잡지로 처음 접한 독자들은 아 지난 호에 나왔던 사람이 이 사람이군 하는 기분으로 읽었을텐데, 옛애인을 떠올리는 기분이랑 비슷했을 것 같아요. ^^
p.s. 번역본과 원서표지. 원제는 첫번째 단편 제목인 [구마짱]으로 곰 그림이 그려진 티를 입고 있었던 애인의 애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