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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니스 | 하우메 발라게로

flipside 2023. 5. 19. 19:17

2004/09/15 08:26

 

2003년 05월 26일


□ [다크니스] (2002)
□ 감독 : 하우메 발라게로
□ ★★★




영화 내용과 반전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미리 알기 원하지 않는 분은 나중에 읽기를 바랍니다. ^^*


[디아더스]의 그늘


- 1 -


높은 나무일수록 그늘이 넓듯이, 어떤 장르에서 모범이 될 만한 작품들은 끊임없이 다음 세대의 창작자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섰기 때문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이들은 대부분 그런 난감한 상황을 잘 해결한 영리한 사람들입니다.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겠지만 공포영화에 있어서 높은 나무들이 이룬 숲은 무척 뚜렷하게 눈에 띄는데, 최근들어서는 반전이 있냐 없냐가 그런 거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반전이 있으면 잘 된 공포영화고, 부실하면 잘못 만든 공포영화가 되는 거죠. 공포영화로 분류되는 작품 중 피가 튀고 전기톱이 나오는 고어영화에는 예외로 적용되겠지만, [식스센스 The Sixth Sense](1999)와 [디아더스 The Others](2001)류의 공포영화에 있어서 반전은 마치 이단심판관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발휘합니다. M. 나이트 샤밀란(M. Night Shyamalan)의 [식스센스] 이후 작품인 [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2000)이나 [싸인 Signs](2002) - 그냥 보면 괜찮게 볼 수 있는 - 이 외면을 받은 이유는 반전이 예상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중요한 기준은 반전이 있을만한 영화라면 [디아더스] 만한 반전이 있냐 없냐가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우메 발라게로(Jaume Balaguero)의 [다크니스 Darkness](2002)는 운이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인정할 만한 반전도 있고, 분위기도 괜찮은 영화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만약 이 작품이 [디아더스] 이전에 나왔더라면 지금보다는 좀 더 호의적인 평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화를 꼼꼼히 살펴보면 [디아더스]와 [다크니스]는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많지만, 같은 국적의 감독이 같은 제목 - [디아더스]의 제작 당시 제목도 [다크니스]였습니다 - 으로 비슷한 류의 영화를 만든다고 알려지면서 비교는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라클로(Choderlos de Laclos)의 원작으로 비슷한 시기에 영화를 제작했던 스티븐 프리어즈([위험한 관계])와 밀로스 포르만([발몽])처럼 흥행면으로나 비평면으로나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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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40년 전 스페인에서 7명의 아이들이 실종되었다가 그 중 1명만 살아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장면들을 짧은 편집으로 중간중간 보여주면서 말이죠. 영화의 분위기는 대충 이 때부터 짐작할 수 있게 되는데, 저는 이런 짧은 편집 장면들이 오히려 본 편 영화보다 상당히 무서웠습니다. 오프닝이 끝나면 영화 속 시간은 현재로 바뀝니다. 한 가족이 그 아이들이 실종되었던 부근의 저택으로 이사를 옵니다. 헌팅턴무도병*에 걸린 아버지 마크(Mark, 이안 글렌), 일에 지쳐 사는 어머니 마리아(Maria, 레나 올린), [식스센스]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아들 폴(Paul, 스티븐 엔퀴스트), 내키지 않는 이사를 오게 된 우리의 주인공 레지나(Regina, 안나 파퀸).


레지나는 곧 이 집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목이 잘린 아이들의 그림을 그리는 - 이런 크레용 그림 낯익어요 ^^ - 동생과 점점 포악해져가는 아버지, 그리고 집과 가족에 일어나는 변화에 무심한 어머니로 인해 레지나는 계속 갈등을 빚고, 결국 스스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남자친구와 함께 집에 얽힌 이야기를 추적해 나갑니다. 레지나는 이 집이 특별한 용도로 건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40년 전 실종된 아이들이 이 집에서 어떤 종교의식의 제물로 바쳐진 것도 밝혀냅니다. 그 중 1명이 도망쳤기 때문에 의식이 완결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밝혀지구요. 그 도망친 1명이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죠. 영화는 이때부터 연금술/밀교/일식 등의 요소로 인해 또 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이미 결말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큰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살펴본 [다크니스]에 대한 영화평들은 비슷한 지적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영화는 뭔가 부족"하다는 듀나의 언급이 가장 적절한 말인데, 잘 나가다가 삐끗하는 류가 아닌, 뭔가 처음부터 빠져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입니다. 줄거리에 어설픈 구석도 많고(그런 이유로 "정말" 충격적인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 등장인물의 행동에 "왜 저러는 거야"하면서 짜증이 나기고 하고... 또 공포영화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깜짝 놀래주기" 장면도 약한 편이구요. ㅠ.ㅠ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 3 -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건질만한 몇 가지 좋은 점들이 눈에 띕니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좋습니다. 주인공인 안나 파퀸, 레나 올린(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중년 여배우들은 어쩌면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것일까요 ^^)을 비롯해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다소 과장되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공포영화니 오히려 그런 면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또 반전이라고 할만한 부분도 도식적이며 예상 가능하긴 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이구요.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 점도 맘에 들었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고 놀란 것은 실제 반전보다는 그 아래 깔려있는 설정 - 아버지가 친자식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 때문이었습니다. 뭐 아버지가 저금통에서 돈을 훔쳐간다고 딸 손가락을 자르는 뉴스가 나오는 나라에 살면서 이런 것에 공포를 느낀다면 다소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요. 아마 [다크니스]를 [디아더스]와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영화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이 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그레이스(Grace, 니콜 키드먼)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었던거죠.




* 헌팅턴병은 매우 희귀하게 나타나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전병이고 중년기에 나타나며 몸의 피로/불안증과 함께 시작된 병은 정신장애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역을 맡은 이안 글렌은 헌팅턴병의 진행과정을 매우 충실히 보여줍니다. 헌팅턴병이 점점 진행되면 성격이 난폭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면, 감독이나 각본가가 작중인물이 앓고 있는 병을 주의 깊게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버지가 성격이 난폭해지는 것을 레지나는 집의 영향으로 생각하지만, 어머니는 헌팅턴병의 악화로 생각하기 때문에 레지나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거죠. 헌팅턴무도병의 증상을 알고 보다 보면 어머니의 무신경한 행동도 다소 이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