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03 23:32
2003년 07월 03일 작성
□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2003)
□ 감독 : 봉만대
□ ★★★
친구가 무슨 영화를 예매했냐고 해서 무심코 "맛있는 사랑, 그리고 섹스"라고 답했습니다. 바로 정정하긴 했지만, [맛있는 사랑, 그리고 섹스]라는 제목도 괜찮지 않나요? ^^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 속에 맛있는 섹스는 많지만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영화는 신이(김서형 분)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해서 역시 신이의 대사로 끝이 납니다. 여자가 남자와 만나 잘 지내다가 관계가 어그러지고 결국 헤어지는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다른 비슷한 주제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남자주인공 동기(김성수 분)의 주도로 줄거리가 이끌어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녀 주인공에게 같은 비중을 두고 흘러갑니다(특히 영화 마지막 부분에 서영이 운전석에, 동기가 조수석에 앉아 있는 장면은, 반대 장면에 너무나 익숙해 있던 제게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충격적", "논란이 많은" 운운하는 여러 보도가 있었지만, 실제로 이 영화의 노출 수위는 평범하다는 생각입니다. 신이가 오럴 섹스를 하다가 중간에 멈추고 입에서 음모를 꺼내는 장면이나, 여성 주인공의 소리지르기로 일관했던 기존 영화들 섹스 신의 음향효과와 단연 차별되는 질펀한 느낌을 주는 다양한 소리들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지만, 대부분의 정사신은 비디오용 에로 영화의 수위를 넘지 않습니다. 피스톤 운동의 시간 길이나 노출로만 따진다면 이필립 감독의 비디오용 영화가 훨씬 더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섹스를 발레로 표현하자면, 봉만대 감독의 표기법(notation)이 다른 영화의 그것에 비해 훨씬 매끄럽고 사실적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맛있는 섹스' 장면들을 제외하고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 있다면, 바로 여주인공의 연기를 들고 싶습니다. 다소 허술한 줄거리에 영화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줄기들이 모두 배우들의 대사로 전달되는 구성속에서, 김서형은 거칠지만 자신감 있는 연기로 신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했습니다. 이에 비해 김성수의 연기는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구미호]에서의 정우성이 연상된다고나 할까요? ^^
마지막으로 홈페이지의 신선한 비쥬얼과 포스터 및 제목의 멋진 조화가 이상하게도 영화속 소소한 부분에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처음에 투자사/제작사 이름이 나올 때 요즘 영화에 어울리지 않게 좀 칙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영화 중간에 삽입되어 에피소드를 나누는 중간제목의 텍스트 역시 밋밋하게 나타나 아쉬웠습니다. 포스터-홈페이지-팜플렛-영화의 텍스트 디자인적 요소들이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통일되었으면 훨씬 깔끔한 영화 한 편이 나왔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