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4 23:08 ... 근본적인 지식이 분리의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파라켈수스 자신의 인생 경험과 기이하게도 들어맞는다. 그의 삶은 여러 공동체로부터의 분리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잘츠부르크를 떠나 스트라스부르로 갔고, 그곳의 1526년 시민 명부에 등장한다. 이듬해인 1527년에는 바젤로 불려가, 시의(市醫)이자 대학 강사가 되었는데, 이는 많은 의사들이 포기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었다.(1527년 초 바젤의 유명한 출판업자 요하네스 프로벤은 다리에 괴저가 생겼는데, 다른 의사들은 모두 절단 수술을 권했으나 파라켈수스는 외과 수술 없이 병을 고쳤다고 한다.) 라틴어로 강의를 하는 한편, 그는 독일어로도 강의를 했다. 이런 언어적 혁신 외에도 그는 전통 의학의 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