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08 00:11
오늘 어렵사리 [왕의 남자]를 봤습니다. 정말 어디가도 볼만한 시간이다 싶으면 매진이더군요. 단성사에서 봤는데 맨 앞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깝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영화는 예상대로 재미있었고, 연산군역의 정진영의 의상이 정말 멋지고 좋았습니다. *_* 같이 본 친구는 장록수역의 강성연의 의상이 더 멋지다고 했구요. 영화를 보면서 써봐야지 하려고 했던 몇가지 이야기 입니다. 뭐 스포일러까지는 아니지만 영화 내용에 대한 부분이 있으니 아직 안보신 분을 위해서 more 기능을 사용합니다.
- 연산군은 1476년 성종 7년에 태어나 1506년 중종 1년에 사망합니다. 죽을때 나이가 우리나이로 하면 31살. 참고로 영화에서 연산군역을 맡은 정진영은 1964년생으로 올해 우리나이로 43살입니다. ^__^
- 왕이 죽고 나면 시호가 정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반정으로 폐한 임금은 바로 이름이 정해지는데 반정이 일어나고 바로 왕은 "연산군"으로 봉해집니다. 따라서 (연산군이 살아있을 때 이야기니 당연하지만 ^^) 영화에는 연산군.. 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 영화속에서 전혀 묘사되지는 않지만 연산군도 정비가 있습니다.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인 폐부(廢婦) 신씨(愼氏)인데 실록을 보니 "어진 덕이 있어 화평하고 후중하고 온순하고 근신하여, 아랫사람들을 은혜로써 어루만졌으며, 왕이 총애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妃)가 또한 더 후하게 대하므로, 왕은 비록 미치고 포학하였지만, 매우 소중히 여김을 받았다. 매양 왕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난, 방종함이 한없음을 볼 적마다 밤낮으로 근심하였으며, 때론 울며 간하되 말 뜻이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했는데, 왕이 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내지는 않았다. 또 번번이 대군·공주·무보(姆保)·노복들을 계칙(戒勅)하여 함부로 방자한 짓을 못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울부짖으며 기필코 왕을 따라 가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군요.
- 연산군은 처형당하지 않고 유배당한 강화도 옆의 섬 교동에서 역질로 죽습니다. 죽기전에 다른 말은 없었고 위에 이야기한 중전 신씨를 보고 싶어 했다고 했다는군요. ㅠㅠ
- 연산군과 신씨에게는 세자였던 이황과 창녕대군 이성 등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만 중종 1년 9월(즉위한 그 달)에 사사(賜死) 당합니다. 신씨는 중종 32년, 1537년 사망합니다.
- 하지만 장록수는 처형당합니다. 장록수는 아무런 첩지도 없었던 그냥 궁녀가 아니라 종4품 숙원(淑媛), 이어서 종3품 숙용(淑容)에 봉해졌던 정식 후궁이었답니다. 이외에 후궁으로는 숙용(淑容) 전전비(田田非), 숙원(淑媛) 김귀비(金貴非)가 있었는데 3명 모두 중종 1년 처형당합니다.
-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를 모함해서 죽여서 연산군이 연희 도중에 직접 칼로 죽인것으로 되어 있는 엄 귀인·정 귀인은 실제로는 다른 연산군 관련 영화,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 같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왕이 "엄씨·정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항과 봉(각각 엄씨와 정씨의 아들)을 불러 엄씨와 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 하니 항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봉은 마음속에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왕이 불쾌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마구 치되 갖은 참혹한 짓을 하여 마침내 죽였다.... 뒤에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엄씨·정씨의 시신을 가져다 찢어 젓담그어 산과 들에 흩어버렸다." 헉... ㅠㅠ
- 인수대비(소혜왕후. 예전 [용의 눈물][왕과 비]에서 채시라가 맡았던 ^^)는 연희 도중 연산군이 밀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창경궁 경춘전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위의 엄귀인, 정귀인을 죽인 연산군이 당일에 장검을 들고 대비전에 가서 "빨리 뜰 아래로 나오라."라고 외치는데 중전 신씨가 말려서 위태로운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행패는 부렸다고 합니다. 엄귀인과 정귀인이 죽은 것은 연산군 10년 3월. 인수대비가 사망한 것은 10년 4월로 이 사건 이후 쓰러져 사망한 것이 아닌가 짐작 됩니다.
- 왕이 손가락을 잘라서 돌려보라고 하고 장생의 눈을 인두로 지지라고 명령한 것이 생각나서 찾아보니 연산군의 악행을 기록한 부분 중에 다음과 같은 형벌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네요.
손바닥 뚫기[穿掌]
당근질하기[烙訊]
가슴빠게기[斮胸]
뼈바르기[剮骨]
마디마디 자르기[寸斬]
배가르기[刳腹]
뼈를 갈아 바람에 날리기[碎骨飄風]
- 마지막 장면에서 중종반정이 마치 무슨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도처럼 그려졌는데 ^^ 실록에 보면 군사들이 궁을 에워 싸고 승지가 왕에게 반정이 일어났다고 고하자 왕이 "승지의 손을 잡고 턱이 떨려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놀랐다고 합니다.
- 상선 김처선(장항선역)은 목매달아 죽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록에서는 하옥되었다가 장 100대 형을 받고 이듬해(연산 11년 4월)에 궁궐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보면 김처선이 "이 늙은 신이 네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를 대강 통하지만 고금에 상감과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다"고 직간하다가, 연산군에게 직접 다리와 혀를 잘리고 죽임을 당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 연산군과 부인 중전 신씨의 묘는 사적 제362호로 도봉구 방학동에 있습니다. 다음 사이트에 자세한 내용을 참조하세요. : 연산군묘역
□ 참고사이트
- 조선왕조실록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엠파스 한국학지식
p.s. 이 포스트 쓰면서 계속 찾아봤는데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너무 좋습니다. 예전 CD-ROM 가격보고 기겁한 생각을 하면 흑흑 감개무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