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07 00:48
[책을 읽고 나서]
옮긴이가 잘 지적했듯이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으면 웬지 뭔가 했다는 뿌듯한 느낌, 읽기를 잘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청춘표류]의 경우에는 이와 함께 "이야..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참 많아!"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데, 11명의 이야기를 죽 읽어가다 보면 책을 읽고 있는 내 자신의 의지력이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조급한지, 정말로 결심이란 것을 해본 적은 있는지에 대해서 자학 -.- 하게 된다. 워낙 잘 쓰여진 이야기이고 인터뷰 솜씨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이 매끄럽지만 몇가지 문제점은 지적하고 싶다.
하나. 너무 오래된 이야기다. 책은 1988년 나온 단행본을 번역한 것이지만, 찾아보니 1985년에 1년 동안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20년 전. 뭐 이런 식의 내용이 시류를 타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편집자의 역량 - 예를 들어 그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를 추적해서 부록으로 넣는다든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그때를 되돌아보는 글들을 넣는다든가 하는 식의 - 을 좀 발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둘. 다 남자들이다. -.- 청춘이라는 것이 남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고, 표류 역시 남자만 겪는것이 아닐진데 어찌 이 책은 일반적인 이름으로 청춘이 여성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책을 아무리 봐도 이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없다. 또 남자들만 등장하는 탓에 한국의 남성들이 겪는 군대라는 문제를 겪지 않는 일본 남성의 인생행보를 따라가는데 다소 거리감을 느껴지게도 한다.
셋. 서구 지향적인 사고가 종종 눈에 띈다. 11명의 등장인물 중 유학이나 해외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해당 분야의 일가를 이루게 되는 사람이 6명이다. 나머지 국내파는 칠기장인, 원숭이조련사, 정육기술자, 수할치, 사진작가 인데 이중 2명을 빼면 사실 유학이 의미가 없는 분야이다. 부분 부분 인터뷰를 통해서, 또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는 "와인의 본고장", "자전거는 이탈리아가 최고였다", "모직물이라고 하면... 영국이 최고죠.", "프랑스 요리를 진정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프랑스에 가서 배워야 했다." 등의 단정적인 표현은 이런 느낌을 더욱 들게하는데, 과잉반응이긴 하지만 "최고의 경지 = 본고장 유학 + 노력"식의 등식을 강하게 하는 것 같아 조금 찝찝하다.
하지만 위의 세가지 단점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책은 재미있고, 무언가 인생의 앞날에 대해 결정하려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적절한 자극으로 도화선이 될 수 도 있을 것 같다. 직장인에게는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한 회의를 불러오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읽기 전에 주의를 요한다. ^^)/
[서지정보]
제목 : 청춘표류
지은이 : 다치바나 다카시 [立花隆]
옮긴이 : 박연정
원제 : 靑春漂流 (1988/1985)
출판사 : 예문
발간일 : 2005년 03월
분량 : 287쪽
값 : 9,500원
[p.s.]
- 일본 원서 표지. 촌스럽다 ^^

- 이름을 근거로 책에 언급된 사람들에 대한 사이트를 찾아봤다. (나이는 책 출간당시, 즉 1988년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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