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08 10:42
[책을 읽고 나서]
블랙캣 시리즈 2권으로 출간된 프리드리히 아니의 [바람의 미소]는 원제가 [쥐덴과 바람의 미소]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쥐덴 형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찾아보니 쥐덴 형사 시리즈 Tabor Süden Reihe는 2001년 처음나왔고 현재 10권이 나와있군요.)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생각없이 블랙캣 시리즈라는 이유로 집어 들어 읽게 되었는데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고 결론도 역시 예상했던 것과 달라서 당황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쥐덴 형사의 어린시절 가출 기억이 나오고 이어서 한 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기까지는 음... 흥미진진... 그런데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섞이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이것이 다른 각도로 겹치게되고 결론은 책 마지막에 나오는 말처럼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됩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쥐덴 형상의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고(역시 시리즈물이 될 정도의 캐릭터는 대부분 다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 등장인물의 대화는 아무 의미 없이 들리긴 하지만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기막한 반전이나 놀라운 비밀 대신에 가족이나 가정이라는 이름아래 감춰진 여러가지 모순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부분 - 특히 아이들과 쥐덴 형사가 나누는 대화 - 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살인사건, 속도감전개를 원하시는 분에게는 비추천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추리소설을 원하시는 분에게는 적극 추천입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
... 나는 장기 가출자들을 많이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도 관심 있게 들어보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가 비슷비슷했고 내용도 평범했으나, 동시에 모두 비슷할 정도로 절망적인 것들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모험을 시도했고,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 부모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시험해 보려 했다. 그들은 막연한 생각으로 극한적인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집에서 매일 벌어지는 위선적인 일들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보다 내적인 것들을 갈망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즉 그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진정한 감정, 진정한 말, 진정한 관계를 찾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워하는 것은 임시방편이나 단순히 달래주기 위해 건네주는 5유로짜리 지폐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어떤 색다른 것, 진정한 삶을 찾아 헤매고 있엇던 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냐고 내가 묻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맘껏 술을 마시며, 되는 대로 살고, 현재의 처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 한마디로 표현해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 생각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경찰이었고, 길 맞은 편에 서서 정지표지판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들은 나를 비웃을 것이다. ...
... 내가 12년 동안 실종자 수색팀에서 근무한 경험에서 얻는 교훈이 있다. 누군가가 - 그것이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아니면 아이들이든 상관없이 - 아무런 이유 없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그가 죽었다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
[서지정보]
제목 : 바람의 미소
원제 : Süden und das Lächeln des Windes(2003)
지은이 : 프리드리히 아니 Friedrich Ani
옮긴이 : 염정용
출판사 : 영림카디널
발간일 : 2004년 02월
분량 : 255쪽
값 : 9,500원
p.s. 원서 표지. 쥐덴 형사 시리즈는 다 이 포맷인데 멋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