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31 18:15
[책을 읽고 나서]
재팬라이프라는 사이트의 요시다 슈이치에 대한 프로필을 보면 "요시다의 작품을 읽다 보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평범한 언어로 금방이라도 옆에서 벌어질 것 같은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어느새 '이 사람이 다 썼으니 나는 쓸 게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그의 섬세한 묘사에 탄복하게 만든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을 통해 그려내는 리얼한 현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판타지에 가까운 간절한 희망이 독자들의 마음을 잡아내는 작가이다."라고 되어있다. 90% 동감! 10%는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읽으면 읽을 수록 그의 작품이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크게 들기 때문이다. 요시다 슈이치가 다 써서 쓸 수 없는 게 아니라 이 사람처럼 주인공 삶의 면면의 주요 대목을 사진 찍은 다음 세세하게 내용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그 뒷면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려주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내 번역된 요시다 슈이치의 최신작 [캐러멜 팝콘]은 이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즉 이제는 더이상 읽고나서 나도 작가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들지 않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쉽고도 무거우며, 명료한 듯 보이면서도 복잡하고, 희극적으로 보이다가도 슬퍼지는 정말 줄거리는 머리에 쏙 들어오지만 읽고다면 복잡한 느낌을 들게 한다. 한가지 이전 작품과 조금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그냥 이렇다고요.. 라고 끝내버렸다면 이번에는 다소 희망의 여지 - 후반부에 나오는 "자신은 없지만 여기 있고 싶어"같은 - 를 남겨준다는 점이 다르다. 요시다 슈이치 팬이라면 점점 더 정교해지는 작품세계를 만나볼 기회가 될 것이지만, 연인과 부부, 4명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트랜디 드라마 구도를 생각한 독자들은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
[기억에 남는 구절]
"얼마 전에는 글쎄 난데없이 잡지를 집어던지더라니까."
멀어지는 웨이트리스의 엉덩이를 바라보면서 다나베가 말했다.
"잡지?"
"그래, 그것도 여성 패션잡지. 너 아냐, 요즘 그런 책들 엄청 두껍고 무겁잖아. 그걸로 한 번 맞아봐라, 장난이 아니다. 돌로 맞은 것 보다 훨씬 더 아프다고. 아 참 그렇지, 그딴 잡지 만드는 것도 어차피 여자들일 테지. 패션 정보니 뭐니 하면서 실제로는 무기를 만드는 거지. 남자에게 던지는 흉기. 그러니까 그렇게 두껍고 무겁게 만들 테지."
곧이곧대로 믿을수는 없는 말인데도, 언뜻 자기주장에 만족스러운 듯 "그래, 내 말이 맞아, 틀림없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다나베를 보고 있으면, 그런 주장도 그런대로 일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게 신기하다.
[서지정보]
제목 : 캐러멜 팝콘
원제 : ひなた (2006)
지은이 : 요시다 슈이치
옮긴이 : 이영미
출판사 : 은행나무
발간일 : 2006년 11월
분량 : 293쪽
값 : 9,500원
p.s. 인터넷 서점에서 요시다 슈이치를 검색하면 11권이 검색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출판사의 면면이다. 은행나무, 문학동네, 북스토리, 열림원, 미디어2.0, 재인 6개 출판사가 2003년 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책을 내고 있는데 조금씩 판권료가 올라가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p.s. 원제는 히나타(ひなた), 우리말로 하면 양달, 양지라는데 왜 이런 번역본 제목이 나왔을까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옮긴이의 말에도 별다른 설명- 왜 [캐러멜 팝콘]으로 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1줄 있긴 하지만 [히나타]의 의미에 대한 말이 없다 - 이 없어서 궁금할 따름.
p.s. 원서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