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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크 | 메리 로취

flipside 2023. 6. 4. 10:42

2009/02/07 13:20

 

[책을 읽고 나서]


국내에서 발간된 메리 로취의 3번째 책 [봉크]의 부제는 "성과 과학의 의미심장한 짝짓기"(The Curious Coupling of Science and Sex)입니다. 시체들을 지나([스티프]) 사후세계를 건너([스푸크]) 도착한 곳이 성(性)이라니 순서가 좀 뒤바뀐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죽음의 이야기를 지나 살아있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것도 제 책이에요! 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릴 만큼 책은 이 전 책들과 분위기도 같고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저자는 머릿말 부분에서 아래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메리 로취 책을 처음 접하시는 분이라면 대충 이런 분위기에 이런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는구나 하고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내가 처음으로 쓴 [스티프]라는 책은 인간의 사체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때문에 사람들은 내게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섹스에 대한 책까지 썼으니, 사람들 입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오르내릴지는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나의 연구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항상 그런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어떤 주제든 책을 한 권 쓸 때마다, 좋은 연구는 모두 - 과학 발전을 위해서든 책을 쓰기 위해서든 - 강박관념의 한 형태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색할 수 있다. 창피함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립도서관에서 다른 도서관과 연결해 책을 대출해주는 부서에서는 나를 심심풀이 땅콩이나 오징어로 삼아 잘근잘근 씹고 있을 게 분명하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그곳에서 [성교 동안 신음과 과호흡의 기능에 대하여]나 [성반응 동안의 혈관 및 근육현상 감시용 항문탐침] 같은 제목의 논문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한 의과대학 도서관에서 어느 학회지에 실린 [자기성애에 의한 사망에서 진공청소기의 이용](* 뒷정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243쪽 참조)이라는 제목의 글을 복사하다가 복사기에 종이가 걸린 적이 있었다. 나는 복사실 담당직원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대신 조용히 옆 복사기로 옮겨가 복사를 계속했다. ...



재미있는 부분이나 재치있는 구절들이 너무 많아서 한 부분을 딱히 드는 것이 어려울 만큼 메리 로취의 책을 읽는 것은 즐겁습니다. 이 책을 소개하고 있는 한 서평은 "나는 만약 로취가 [벌레 : 심해서관충(深海棲管蟲)과 해양열수분출공(熱水海洋噴出孔)의 흥미로운 과학이야기]라는 책을 썼다고 해도 역시 읽을 것이다. 로취는 가장 알려지지 않은 불유쾌한 것들을 잘 다루면서 그런 것들을 잘 걸러서 유쾌하고 유익한 꾸러미로 전달해주는 드문 작가이기 때문이다"(If Mary Roach ever writes a book called "Worm: The Curious Science of Deep-Sea Tube Worms and Hydrothermal Vents," I would still read it, because she's one of those rare writers who can tackle the most obscure unpleasantness and distill the data into a hilarious and informative package.)라고 시작하고 있는데 100% 동의합니다. 취향에 따라서는 극히 싫어하실 수도 있으니 읽기를 결심하기기 전에 꼭 목차를 확인하세요. : )


[서지정보]


제목 : 봉크- 성과 과학의 의미심장한 짝짓기
지은이 : 메리 로취 Mary Roach
옮긴이 : 권루시안
원제 : Bonk : The Curious Coupling of Science and Sex (2008)
출판사 : 파라북스
발간일 : 2008년 07월
분량 : 396쪽
값 : 17,000원




p.s. 이 책 만큼 각주가 재미있는 책을 찾아보기 힘들것 같습니다. 자위나 몽정을 막아주는 장치에 대한 각주는 다음와 같습니다. ^^ - 자위를 방지하기 위한 고안품을 통칭하는 이름을 정할 때 미국 특허청은 완곡한 표현을 더 많이 썼다. "수술기구"라는 말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위생기구"라는 표현도 썼는데, 마구 날뛰는 성적 충동을 재채기 차단판이나 대걸레 같은 것이 어떻게든 억제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p.s. 번역본과 원서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