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13 01:23
04월 30일 목요일 둘째날
로열 칼리지 오브 뮤직
오늘의 첫일정은 로열 칼리지 오브 뮤직(Royal College of Music|RCM)에서 있는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의 마스터 클래스 였습니다. 오 머레이 퍼라이어라니! 아침부터 비가 살짝 내려서 좀 걱정스러웠지만 혹시 못찾아갈지 몰라서 일찍 집에서 나섰습니다. 시차때문인지 아직 배가 고프지는 않아서 그냥 출발. 사우스캔징턴역에서 내려서 학교앞에 도착하니 비가 그쳐있더군요. 역에서 어리버리하게 약도를 보고 있었는데 덩치가 레슬러 같은 흑인역무원이 자신이 가진 지도를 펼쳐 보여주며 자세하게 길안내를 해주어서 초행길에 어렵지 않게 잘 찾았습니다. RCM은 프롬공연으로 유명한 로열앨버트홀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여기가 로열앨버트홀

바로 앞이 RCM본관. 멋지죠?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아직 박스오피스도 열지 않아서 방문객 스티커만 받고 먼저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RCM 바로 옆에는 임페리얼 칼리지와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가 있더라구요. 배가 고파서 임페리얼 칼리지 매점에서 사과주스를 하나 사먹었습니다. ^^


주위 구경을 마치고 다시 RCM으로 가니 이제 마스터 클래스가 시작되려고 하는지 아까는 텅비었던 로비가 바글바글 했습니다. 미리 프린트해간 예약확인 메일을 건내주니 이미 프린트되어 작은 봉투에 담긴 표를 주더라구요. 자리를 잡고 앉아서 살펴보니 역시 오늘 공연의 반수 이상은 노년층 관객이었습니다. 어리버리하게 자리를 예약해서 피아니스트의 얼굴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어요.(다들 반대편에 앉아 있더군요 ㅠㅠ) 어쨌든 제가 손동작을 봐서 알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뭐 큰 문제될 것은 없지... 하면서 공연 마스터 클래스 시작을 기다렸습니다.
머레이 페라이어의 마스터 클래스는 약 2시간 30분(+쉬는시간 20분)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길더군요. 마스터 클래스에는 처음 참관하는 것이라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했는데 학생 1명씩 먼저 곡을 연주하고, 해당 곡에 대해서 페라이어가 지적을 해주면서 연주를 같이 다시 해보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첫타자는 Meng Yang Pan이라는 여학생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D장조 K.576. 우선 학생이 연주했는데 오 작은 홀이라서 그런지 소리가 참 좋더라구요. 1악장 연주가 끝나고 박수. 이어지는 퍼레이어의 칭찬과 함께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서 도입부를 연주하는데 어머낫! 할 정도로 소리가 좋더라구요. 아 이런게 영롱한 것 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정로도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아는 것이라서 2악장까지 진행된 마스터 클래스를 흥미롭게 지켜밨습니다.(물론 뭐라고 하는지는 거의 못알아들었습니다. Orz) 2번째 학생은 Konstantin Lapshin이라는 남학생의 브람스 Fanstasien op.116 연주. 안내지에는 4곡이 적혀 있었는데 실제 진행은 2곡만 했습니다. 저는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는데 상당히 폭발적인 느낌이 드는 곡이었어요. 앞서와 마찬가지로 개별 부분부분에 대해서 퍼레이어가 먼저 연주를 해보고 설명을 하고 학생이 따라하기도 하고... 중간에 일어서서 악보를 직접 짚어주기도 하고... 자상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이어서 20분간의 쉬는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중에 마스터 클래스에 대한 촬영과 녹음은 삼가달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거의 도찰 수준으로 머레이 아저씨를 찍었습니다. 저기 구석에 앉아 있는 분이 머레이 페라이어. 쉬는 시간에 잠깐 아는 사람들이랑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바로 자리에 앉아서 저렇게 악보를 보시더군요. 학생들이 아무도 와서 물어보거나 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어요.(사인 받는 사람도 없었구요. 있으면 끼어서 한 번 받아보려 했었는데 흑흑)

쉬는시간이 끝나고 마지막 학생은 Anna Peletsis의 쇼팽 스케르쵸 3번이었습니다. 이 곡도 알고 있는 곡이라서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이 학생의 연주도 인상적이었지만 머레이 페라이어의 잠깐잠깐 연주도 정말 좋더라구요. 중간에는 무슨 설명 때문인지 베토벤-리스트 편곡 교향곡 연주도 일부 들려주었습니다.
마스터 클래스는 끝나고 바로 질문/답변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4명 정도가 질문을 하고 답변을 했는데 대부분 무슨 소리인지... ㅠㅠ 하고 멍하니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최자로 보이는 학교관계자가 이 학교에서 이번에 콩쿠르에 몇 명 본선 진출이 예정되어 있는데 조언을 부탁한다고 했더니 "Don't practice much!"라고 짧게 대답해서 웃음을 자아내고, 무대뒤에 있던 학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어설프게 알아들은 바로는 물론 연습이 중요하지만 콩쿠르를 바로 앞둔 상태에서 연습보다는 그 곡에 대한 생각과 감정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이야기였어요.(손가락으로 머리와 가슴을 가르키며) 다시 한 번 큰 박수가 이어지고 머레이 페라이어는 퇴장. 아래는 안내지와 표입니다.

임페리얼 칼리지
생각보다 마스터 클래스가 길어져서 배가 더 고파진 상태. 아까 쥬스사러 갔었던 임페리얼 칼리지에 다시 이동. 원래 학생식당을 이용하려 했지만 아까 갔을 때와는 달리 사람이 너무 많더라구요. 커피랑 샌드위치를 사서 벤치에 앉았습니다. 비는 이미 그치고 바람은 많이 불지만 학생들의 활기찬 걸음을 보면서 대학교정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것도 나름 좋더군요. 아래는 샌드위치랑 학교 교정의 모습입니다.(이 정도 날씨에도 잔디밭에 드러눕는군... 했습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
걸어서 이동이 가능한 거리에 영국 자연사박물관과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이 있어서 우선은 자연사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성당이나 대학처럼 보이는 근사한 건물이었는데,

입장하니 처음 맞아주는 것은 거대한 공룡이었어요.

여러가지 눈길을 끄는 것이 많았는데, 큰 세콰이어나무의 밑둥이나 일본 고베지진 현장을 재현한 곳이 눈에 띄었습니다.(저 위에 올라가 있으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그러더라구요.)



볼 것은 넘치도록 많았지만 비과학적인 성격탓에 신기한 것들만 눈에 들어오고 학습적인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 아이들이 참 많았는데 다들 재미있어 하더라구요.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
자연사박물관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바로 옆에 위치한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이었습니다. 짜잔.(나중에 알았는데 뒷쪽 문이었어요. 처음에 책에서 본 것과 다르네? 했습니다. ㅠㅠ)

박물관 초입부터 늘어선 조각들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이런 박물관은 처음 보는 것이었거든요.

처음에는 규모를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정말 엄청나더라구요. 특히 지하의 방들은 미로같아서 여기를 가도 새로운 전시실, 저기를 가도 새로운 전시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자기와 장신구, 가구류, 그림, 철제품, 스테인글라스, 갑옷, 칼, 총 등등의 홍수에서 휩쓸렸습니다. 모든 전시실이 다 새롭고 놀라웠지만 최근 이름을 알만한 디자이너들의 의상이 전시된 패션관도 재미있었고, 공연을 주제로한 특별전시실도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놀란 것은 분수나 기둥, 교회문 등의 대규모 석조물, 조각들을 모아놓은 방이었어요. 그 규모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다리가 아플 쯤되서 안쪽 정원에 앉아서 한가롭게 바람과 햇살을 즐겼습니다. 멋지죠?

나올 때는 제대로 앞쪽 정문으로 찾아서 나왔습니다. 책에서 본 그 문이더군요. 저 둥그렇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들고있는 석판의 내용은 "모든 예술은 지향하는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는가에 따라 그 우수성이 결정된다."라는 조슈아 레이놀즈의 말이라는군요. : ) 나머지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에서 찍은 사진들은 따로 포토로그에 올리겠습니다.

로열 페스티벌 홀 - 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 연주회
한 번 더 올 수 있으려니 하고 숍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는데 이것이 일정 중에는 마지막이었어요. ㅠㅠ 하지만 공연시간이 다가오고 처음 찾아가는 곳이라 좀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의 공연은 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로 프로그램은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이었습니다.(재미있게도 마지막날 본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에도 교향적 무곡이 있었어요.) 지휘자는 휴 울프(Hugh Wolff), 협연자는 니콜라 베네데티(Nicola Benedetti).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어린나이에 DG와 음반계약을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젊은 연주자였습니다. 찾아보니 올해 KBS교행악단과 협연을 위해 내한을 했었더군요.
공연장인 로열 페스티벌 홀은 쉽게 찾았습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건물이기도 했고 안내가 잘 되어 있더라구요. 도착해서 예매메일 프린트해 간것을 주었더니 티켓을 주었습니다. 저는 7일 공연도 예매했었기 때문에 2장을 받았습니다. 좌석은 가난한 여행자를 위한 합창석. 가격은 9파운드였습니다. 2번째는 7일 사라 장 공연 티켓으로 Front Stall, 23파운드였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홀의 앞은 먹고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아까 샌드위치 이후에 빵이랑 우유로 간단히 점심을 때운 기억이 났지만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아서 음악회 쉬는시간에 아래층에 있는 EAT에 가서 라떼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저녁을 대신했습니다. 아래는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과 앞에서 바라본 로열 페스티벌 홀. 가운데 EAT가 있죠.


제가 들어본 곡이라고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정도였고 그나마 3악장 정도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곡이나 교향적 무곡 모두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가까운 곳에서 실황연주를 보는 즐거움이 컸는데 뒷모습이긴 했지만 니콜라 베네데티의 연주 모습을 생생하기 지켜보면서 음악을 들으니 무척 좋았습니다. 커튼콜이 이어지고 꽃다발도 중간에 받았지만 앵콜은 없었습니다. 앞에서 한 번 말씀 드렸듯이 대부분이 노년층 관객이라서 박수가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다는 느낌도 좀 이었어요.(물론 브라보~ 하는 소리는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 제가 앉은 합창석 양쪽 옆에도 모두 노인분이 앉으셨는데 한 분은 좀 정정한 분, 다른 한 분은 거의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하는 분이었는데 가만히 지켜본 바로는 예의상 박수를 치는 정도 외에는 계속 박수를 치지는 않으시더라구요. 20분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이어진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은 참 매력적이면서도 강함이 느껴졌는데 일사불란하게 착! 하고 끝나는 모습이 정말 멋지더군요. 다양한 악기가 동원되어서 - 하프가 2대, 피아노에 타악기 등등 - 오케스트라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도 좋았구요. 아래는 쉬는시간에 살짝 찍은 사진이었는데 제가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입니다. 이런 자리라서 바이올리니스트의 뒷모습만 ^^

연주회가 끝나니 거의 9시 20분 정도였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시내로 가서 걸어다니다 피카딜리 광장도 가고 밤의 내셔널 갤리리 모습도 보았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씻고 즐거운 기분으로 잠이 들었습니다.(침대를 옮긴 즐거움도 ^^) 내일은 본격적인 미술관 관람의 첫날~ 두근두근하면서 다음 날을 기다렸습니다.
지출내역
- 사과쥬스 : 0.36파운드 (학교매점)
-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 공연 기부금 : 1파운드
-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 커피 : 3.85파운드 (학교내 카페)
- 빵과 우유 : 1.58파운드 (제가 수첩에 이렇게 쓰긴 했는데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나요 ㅠㅠ)
- 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 입장권 : 9파운드 (카드예매)
- 라떼 커피 : 1.85파운드 (EAT)
p.s. 결산해 보니 이날 가장 적게 돈을 썼더라구요.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에 빠져서 하루를 보낸 영향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