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8 23:41
파리 여행기를 올리려고 마음만 먹고 있다가, 일단 먼저 마음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기차(RER)에서 소매치기(날치기라고 할 수 있는 -_-) 당한 후 경찰서 가서 폴리스 리포트를 받은 이야기를 먼저 올립니다. 국내에서도 제 부주의로 물건을 잃어버린 적은 있어도 소매치기를 당한 적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했었습니다.
소매치기 당한 날은 고흐의 마을 오베르 쉬아즈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길거리에서나 기차/지하철 안에서 태블릿을 꺼내 보거나 가방을 꼭 껴안고 있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었던 터라 그동안의 조심성이 잠시 어디로 떠난 찰라에 사고가 있었습니다. 오베르 쉬아즈를 한참 앞두고 있는 한 역에 열차가 정차했는데 제 뒤에서 후드티를 쓴 한 사람이 달려와서 제가 들고 있던 태블릿과 바로 옆에 둔 가방을 들고 쏜살같이 열차에서 내려 달아났습니다. 제가 앉았던 자리가 문 근처였고 열차방향을 앞으로 하고 앉아 있었는데 아마 (저는 의식 못했겠지만) 뒤에서 계속 제 행동을 보고 있었겠지요. Orz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권사본이랑 돈등은 모두 가방이 아니라 주머니에 있어서 물품만 도난당했습니다. 처음 가본 역에서 지갑까지 잃어버렸으면 정말 큰 낭패였을 것 같아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헉 하면서 바로 뒤를 쫓아 따라 내렸지만 이미 어디로 달아났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정말 빠르더군요.... 그 정도 달리기 실력이면 육상을 하지 ㅠㅠ 하면서 허탈해 하고 있었는데 한 분이 다가오셔서 어찌된 일인지를 영어로 물어오셨습니다. 제가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종종 이런 일이 있어서 다들 열차 안에서는 조심한다는 말씀 + CCTV를 확인해보겠냐고 물어보시더군요. 물건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게 가능한지 물어봤더니 그 분이 역무원에게 가서 몇 마디 하시더니 경찰서의 확인(제가 신고를 하면)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하시더군요. CCTV를 볼 생각은 없었지만 여행자 보험에서 일부 보상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경찰서에 신고는 해야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터라 경찰서가 어디 있는지와 프랑스어로 제가 겪은 일을 써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지금 생각하니 너무 황당한 일을 겪어서 그런지 영어가 술술... 예전에 심슨에서 바트가 프랑스에서 노예처럼 일하다가 탈출해서 프랑스어를 술술하던 편이 떠오르네요 ^^) 그 분은 흔쾌히 근처의 경찰서 위치를 약도를 그려서 알려주시고 거기에 제가 기차에서 소매치기로 물건을 잃어버려서 신고를 하고 싶다는 내용을 프랑스어로 적어주셨습니다. 거기에 혹시라도 경찰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 자신이 프랑스어로 설명을 해줄테니 이 전화번호를 경찰에게 말하라며 전화번호를 적어주시는 친절까지! 감격 ㅠㅠ
다음 기차시간도 한참 남았고 경찰서 신고는 해야 겠다는 생각에 약도대로 경찰서로 이동했습니다. 비도 오고 생각보다는 꽤 멀었지만 일단 경찰서에 도착. 여기가 경찰서 모습~

2명 정도 민원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어서 저도 옆자리에 앉아서 누군가 나오길 기다렸는데 한 경찰이 나오더군요. 제가 아까 아저씨가 프랑스어로 적어준 종이를 내밀자 대단히 빠른 프랑스어로 말을 하고는 그냥 가버렸습니다. 속사포 같은 프랑스어 홍수에 정신이 멍해서 잠시 어쩌지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다른 경찰이 나오더군요. 이 분은 아까 경찰보다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런 저와 경찰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기다리고 있던 한 분이 영어로 중간에 통역을 해주셨습니다. 긴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론은 이곳에서 접수할 수는 없다.. 여기는 영어가 가능한 경찰이 없으니 조금 더 큰 지역으로 가라... 원래 파리 외곽에는 영어로 신고할 수 있는 경찰서는 많지 않다.. .이 근처에 영어로 신고를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경찰서는 □□□ 있는데 그곳은 OOO번 버스 타고 가면 된다.. 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베르 쉬아즈로 가야 하는 몸. 일단 이곳에서 신고는 포기하고 영어로 통역해준 분, 친절한 경찰관에게 감사를 표한 후 다시 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래는 제가 일을 당한 역 사진. 나중에 신고할 때 이름이 필요한 것 같아서 사진을 한 장 ^^

일정은 어그러진 상태로 오베르 쉬아즈 여행을 마치고 다음 날 2번째로 경찰서를 찾아 나섰습니다. 짧은 생각에 역 가까운 곳이면 영어로 신고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차표를 예매하러 간 김에 오스틀리츠역의 경찰서 방문. 경찰서 문은 그냥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초인종 비슷한 것을 눌러야 안에서 열어주더군요. 일단 들어가서 접수대에 있는 경찰에게 어제와 동일하게 프랑스어로 적어주신 종이를 내밀었습니다. 이 경찰도 어제 경찰과 마찬가지로 당황하며 몇가지 질문을 하더군요. 여행객이냐.. 어디가 숙소냐... 왜 거기가 숙소인데 여기까지 와서 신고를 하려고 하냐... (어제와 동일하게) 여기서는 영어신고 접수가 안된다... OOO으로 가봐라... 내가 주소를 적어줄테니 그리로 가라.. 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경찰들이 저와 말하고 있는 경찰을 보고 "오 너 영어 하네? 하하하"하고 지나가고 재미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렇게 2번째 경찰서에서 신고는 실패..
주소를 적어주긴 했지만 태블릿도 잃어버린 상태에서 길찾기는 어려운 상태라 다음날 다시 한 번 큰 기차역 근처에 경찰서를 가봤습니다. 이번에는 생라자르역. 여기서도 앞선 경찰서와 동일하게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이 경찰은 유창한 영어로 여기는 임시 경찰소 같은 곳이라서 접수가 안된다... 이 역에서 3정거장만 가면 있는 샹젤리제-클레망소역 바로 앞에 있는 경찰서가 여행객들이 이런 일 당했을때 많이 이용하니 그곳으로 가라고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3번째 경찰서에서도 신고는 실패.. .하지만 뭔가 희망을 본 느낌 : )
앞선 경찰의 안내대로 샹젤리제-클레망소역에서 내리니 바로 그랑팔레 옆에 경찰서가 있더군요. 아래 사진에 횡단보도 건너면 바로 경찰서.

문앞에 있는 경찰에게 물어보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들어가서 도난을 당해서 사건 신고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곳 경찰분은 이런 일에 익숙하신듯 유창한 영어로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묻더군요. 제가 한국이라고 했더니.. 잠시만.. 하면서 신고서 양식을 찾았습니다. 큰 3공파일에 각 언어별로 범죄피해 사전신고서가 있었고 한국어도 있더군요. 제게 볼펜을 주고 기록을 하라고 해서 기재를 했습니다. 아래 사진이 바로 범죄피해 사전신고서입니다. 영어로 인적사항이랑 피해발생일, 피해종류, 발생장소, 피해품목을 적으면 되는데 모든 안내가 한글이라 작성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아래가 범죄피해 신고서입니다. 제 정보가 너무 많이 일일히 지우기 어려워서 흐릿하게 처리했습니다.(원래는 3장~)


제가 다 작성하고 제출하니 경찰이 서류를 받고서는 call 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단순한 저는 call = phone이라는 생각에 어? 바로주시는거 아닌가요? 지금 안돼나요? 어쩌구 했더니 약간 짜증섞인 표정으로 말 그대로 부를때(call) 까지 기다리라는 뜻이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_-;; 죄송합니다.. 하고 조용히 한 15분쯤 기다렸더니, 제 신고서로 실제 폴리스 리포트를 작성해서 신고서 2부, 폴리스 리포트 2부를 복사 한 뒤 각각 제 사인과 경찰의 사인을 받아, 한 부는 제게주고 한 부는 경찰이 보관을 했습니다. 아래가 폴리스 리포트.

이것으로 종료~ 귀국해서 해당 보험사에서 요구하는 제출서류(여권사본, 출/입국기록 날짜 부분 여권 복사, 도난당한 물건 영수증 등등)랑 범죄피해신고서, 폴리스 리포트를 함께 제출해서 무사히 보험금은 잘 받았습니다.
폴리스 리포트 받는 것과는 별도로 그냥 도난 사고에 대한 감회?를 적어보면, 일단 여행 중에 이런 사고를 겪고 나면 그날의 일정이 망가지는 것은 둘째치고 이후 남은 시간 동안 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 가장 큰 피해인 것 같습니다. 저는 남은 이틀 동안 다니면서 혹시라도 또 하는 마음에 최대한 조심을 했었거든요. 그래도 빨리 마음을 추스린 것은 사건 일어난 직후 만났던 친절한 아저씨 덕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따뜻한 배려가 없었더라면 사건이 준 충격에서 바로 벗어나긴 어려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추가로 사고난 날 갔던 오베르 쉬아즈의 고흐 형제 무덤을 보면서 내가 겪은 일은 별거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군요. 아래 고흐 형제 무덤 사진을 올리면서 이상 폴리스 리포트 받은 이야기를 마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