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19 23:04
2002년 06월 24일 작성한 글입니다.
월드컵이 아니었다고 해도 작가 채영주의 별세소식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의 사망소식 기사는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이유 때문인지 4-5일이나 뒤늦게 언론에 보도 되었고, 저는 그 늦은 기사도 이틀 후에 읽었습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다작을 한 것도 아니고, 신문에 이름이 자주나거나 TV에 얼굴을 내밀지도 않았었죠.
한 작가의 소설이 맘에 들면 그 작가가 쓴 사소한 잡글까지 찾아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고아원을 배경을 그려지는 슬프고도 재미있는 일상들을 잘 그려낸 연작소설 [목마들의 언덕](예전에 어떤 방송사에서 특집드라마로 만들었었지만 책이 주는 감동에는 못미쳤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던 은희경의 [새의 선물]도 원작에 못미치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것도...)을 읽고 좋은 느낌을 받았던 저는 그의 다른 소설들을 하나 하나 찾아 읽었고,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를때면 가끔씩 "ㅊ"칸에서 그의 신작이 나왔는지 살펴보곤 했었습니다.
딱 이거다라고 규정지을 수 없을만큼 그의 소설 세계는 다양했고, 저는 정형화되지 않은 몇몇 작품에 감탄했었습니다. 남북한이 통일된 후의 미래를 신선하게 가정한 [시간 속의 도적]이나 인상적인 사랑이야기 [연인에게 생긴 일]등은 읽은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줄거리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책을 읽을 때 책을 쓴 이가 살아있나 죽었나를 따지지 않고 읽지만, 기억하고 있던 작가의 죽음을 접하니 앞으로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때이른 죽음이 항상 떠오를 것 같습니다.
올해 초에 나온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 표지글이 인터넷 서점에 올라왔길래 아래 옮겨봅니다.
"제 기억 속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많은 날들을 함께 보냈던 사람도 있고, 하루 혹은 몇 시간을 스쳐가듯 만났던 사람도 있습니다. 저를 아프게 한 사람도 있고 제가 큰 상처를 안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 중 누군가가 그리울 적이면 저는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그를 불러옵니다. 만일 그가 바쁘다면 제가 찾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눕니다. 안부를 묻고, 지난 일들을 묻고, 현재의 고층을 털어놓고,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기도 합니다. 서로를 격려하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말자며, 나중에 진짜 한자리에 모여 부둥켜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자며, 최선을 다했노라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삶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채영주의 "무슨 상관이에요" 표지글
[무슨 상관이에요], 채영주, 문학과지성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