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1 17:38
... 그의 전직은 결혼 관련 비즈니스였다. 경조사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일본인들의 결혼식에는 한정된 수의 하객들만 참석한다. 부조금도 우리보다 '0'이 하나가 더 붙는 2~3만 엔 정도는 보통이다. 대신 하객들은 풀코스의 프랑스 요리나 눈알이 튀어나오게 비싼 고급 스시를 대접받고, 섭섭지 않은 기념품을 받아 돌아간다. 아오키는 거기서, 하객들에게 전달하는 결혼식 선물 - 고급 접시나 과자 등 - 의 카탈로그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그만두고 오핸로 순례에 나온 것이다.
"저기 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그렇게 괜찮아도 되는 거야?"
뭔가 좀 어색하다 싶었더니, 그랬다. 직장 때려치우고 절치부심한다는 슬픈 스토리의 주인공이어야 마땅한 아오키는 웬걸, 발랄한 코미디 캐릭터였던 것이다.
"응? 아아, 옳거니. 뭔가 어두운 얼굴로 말이지. '아, 이제 어쩌나'라든가 '난 이제 어떻게 살지' 뭐 그런 분위기의 인터뷰를 원하는 거야?"
"아, 아니. 뭐, 꼭 그러라는 게 아니고……."
"아, 이제부터 뭐 먹고살아야 되나……. 어떡하지."
민망해하는 내 카메라 앞에서 혼자 '스탠바이 큐' 주고 기어코 눈물 연기를 펼치더니 "어땠어?"하고 너스레까지 떠는 아오키였다.
"근데 진짜 지금부터 어떡할지 걱정 안 돼?"
"별로."
"그럼 앞으로 뭐 할 건지 정했어."
"글쎄. 아직 안 정했는데. 그냥 뭘 하든, 즐겁게 해나가면 되는 거 아냐?"
아오키는 밝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아오키의 대답은 번뇌로 가득 찬 내 머릿속을 돌풍처럼 휘젓는다. 이 남자에게는 세상의 쓴맛이니 장래니, 철이 덜 들었다느니 하는, 걱정해준다는 명분 아래 실은 주눅 들게 하는 인생선배들의 가르침은 털끝만 한 의미도 없는 걸까. 아오키의 이 무심한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
아오키 군,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인생, 그냥 즐겁게 지내면 되는 거야, 응? 인생이란 거, 그렇게 단순한거야? 뭔가 무겁고 복잡한 게 있어야 되는거 아니야? 그냥 즐거우면 되는 거라고 하기엔, 왠지 불안하잖아…….
뭐 좋은 일이 있다고 까불까불, 싱글벙글 웃으며 가방을 짊어지는 아오키를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아오키처럼 뭔가를 즐겁게 해나갈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서른살 오핸로 혼자 걷는 1,400km]중에서, 김지영, 책세상, 2009
사누끼 우동만 먹으며 다니는 여행을 꿈꾸며 다카마츠를 가볼까 알아본 적도 있었기 때문에 시코쿠에 대한 정보는 조금 있었고, [한겨레]의 '매거진 esc' 섹션에 연재되었던 "김남희의 시코쿠 도보여행"([일본의 걷고 싶은 길 2-규슈·시코쿠], 미래인, 2010)을 통해 순례길을 알고 관심이 있었던 터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순수한 여행기와 본격 여행안내서의 중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는데, 실제 시코쿠에 가거나 순례길에 나선다면 유용할 정보도 있지만, 다큐 촬영을 하면서 순례길에 나선 저자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좀 더 많기 때문에 여행기 쪽에 좀 더 방점이 찍힙니다. 위에 밑줄은 저자가 28번 절 나이니치지에서 만난 아오키라는 청년과의 대화 부분인데, 순례를 나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저자에게나 독자에게 그렇군... 그럴 수도 있군... 아 그랬군... 하는 느낌을 줍니다. 시코쿠 순례길이 궁금한 분이나 재미있는 여행기를 찾으시는 분께 추천합니다.(전 책읽기 전까지는 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했는데 책 읽고 나니 아 힘들겠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멀어졌어요. 하지만 시코쿠는 한 번 꼭 가보고 싶어졌어요. ^^)
p.s. 네이버캐스트 :: 지구촌 산책 - 1200년 역사의 일본 불교 성진 순례길-일본 시코쿠 헨로미치(시코쿠 순례길)를 참조하셔요~
p.s. 구글맵의 시코쿠 순례길. 하루 30~40km씩 걸으면 약 1개월 반이 걸린다고 합니다. O.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