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코타로 8

사신 치바 | 이사카 고타로

2006/06/21 20:50 [책을 읽고 나서] 이사카 코타로의 [사신 치바]는 정직한 제목답게 '죽음의 신'[死神]인 '치바'가 인간세계에서 자신의 업무(사람을 죽일지 살릴지 관찰해서 판단하는 일)를 하면서 겪게되는 에피소드 6개를 묶어 놓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그의 작품으로는 작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칠드런]과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는데, 각 단편을 떼어놓아도, 하나의 연작소설로 묶어서 전체를 봐도 좋은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점과 본격 추리물은 아니지만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맛보고 싶은 긴장감이나 수수께끼 풀기의 즐거움을 준다는 면에서 무척 닮아있다.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사신의 이미지는 긴 낫을 들고 검은 두건을 쓴, 얼굴은 보이지 않거나 해골모양이거나 검은 옷을 입고 소매에 팔을 감춘 저승사자..

book 2023.05.30

칠드런 | 이사카 코타로

2005/05/22 11:32 [책을 읽고 나서] 연작소설의 재미를 충분하게 주는 따뜻한 작품이다. 단편으로 떼어놓고 읽어도 5편의 작품이 모두 완성도 높고 훌륭하지만 장편으로 묶여 있으니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추리기법을 매우 매끄럽게 사용하고 있어 이 작가의 추리소설이 기대된다. (찾아보니 2005년 발표한 단편으로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단편상을 수상했단다.) 처음 딱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는데 너무 가벼운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다가 점점 소설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5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리트리버"라는 단편이었는데 주인공 진나이의 매력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면 늘 하는 버릇처럼 이 작품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든다면 진나이역..

book 2023.05.29

[밑줄] 불꽃축제는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2008/10/19 00:32 도도로키는 체념하듯 말한다. "불꽃축제는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하고 조용히 읊조린다. "무슨 말이에요. 뜬금없이." "마을마다 예산은 다르지만 말이야, 그래도 여름 휴가철이면 시집갔던 딸이 아이들 데리고 친정 와서 식구들끼리 함께 구경 가거나 하는 점이 똑같지. 온갖 직업에 다양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한자리에 모여서 하늘로 펑펑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며 아, 크다, 예쁘다, 내일도 다시 힘내야겠다, 생각을 하고, 내년에도 또 보러 오자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불꽃축제의 좋은 점이라고." 매사에 엉성하기 짝이 없고 거친 도도로키가 갑자기 섬세한 말을 하는 바람에 야오야기 일당은 살짝 당황했다. "뭔지 몰라도 좋은 말을 하네요, 록키." 모리..

underline 2023.05.16

[밑줄] 행복이란 원래

2007/08/10 10:06 ... 역 앞까지 가는 시영 버스의 차체는 우중충한 파란색이었다. 희미한 중간톤. 얌전하게 보였다. 통근시간대는 벗어났을 터인데 비어 있지 않았다. 도쿄의 전철 러시아워에 비하면 훨씬 나았지만 행복이란 원래 다른 것과 비교해서 만족하는 것이 아닌 법이다. ...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중에서, 이사카 코타로, 인단비 옮김, 황매, 2007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도 공감 ㅠㅠ 지금보다 나쁜 상황만을 생각하고 근근하게 살았는데 털썩... 아 난 언제쯤 비교하지 않고 행복을 느낄 수 있으려나... ( ' ' ) p.s. 영화화도 되었네요. 포스터에 나오는 주인공을 보니 딱 그 캐릭터다 싶은데 보고싶군요. :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ー http://www.ahiru-kamo.j..

underline 2023.05.13

[밑줄] 치마를 올려주는 사람

2007/05/03 23:32 "무솔리니는 최후에 애인인 클라라와 함께 총살을 당하고, 시체는 광장에 공개되었다는 모양이야." "어머나!" "군중이 그 시체를 향해 침을 뱉고 매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체를 거꾸로 매달게 되었는데 그러자 클라라의 치마가 뒤집혔지." "어머나!" "군중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대. 죽여준다, 속옷이 훤히 다 보인다, 하며 흥분했겠지. 어느 시대건 그러게 마련이지 남자들이란. 아니 여자들도 그랬겠지.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치마를 올려주고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서 뒤집히지 않도록 해줬대." "어머나!" 나는 그때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을 상상하고는 그 담력에 숨이 막혔다. 주위에서는 틀림없이 무슨 짓이냐면서 성을 냈겠지. 무섭지 않았을..

underline 2023.05.12

[밑줄] 후회막심한 일들뿐이죠

2007/03/01 18:50 "그것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내가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그랬다고." 할머니가 임종을 맞을 당시 병원의 정경이 떠올랐다. 내가 뛰어 들어갔을 때 할머니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시즈카는 병원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병실에 들어간 건 나 혼자였다. 병실의 흰 벽이 평소보다 더 새하얂게 보였다. '백지 상태로 되돌린다.'고 말할 때의 그 '백지'에 어울리는 '순백'이었다. 할머니와 마지막에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할머님께서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말을 전해 준 그 간호사는 어딘가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만약 할머니의 말을 내가 직접 들었더라면 편의점을 터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후회막심한 일들뿐이죠."..

underline 2023.05.12

[밑줄] 인간은 기적적인 생명체야

2006/11/23 22:10 "인간은 기적적인 생명체야. 현명한지 어떤지는 몰라도. 다만, 생명체로서의 기능과 능력은 무서울 정도로 복잡해. 기적이야, 이건. 생물이나 진화 같은 걸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인거야. 알겠어? 우리들의 배경에는 몇십억 년이라는 세월이 있어. 기적에 의해 살고 있는 셈이지. 그런 생각을 해보면, 굳이 종교 같은 걸 내세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존경하고, 감사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할 대상은 바로 인간이라는 생명체야.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대단한 일이니까." "자네, 정말 재미있는 얘기를 하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구로사와는 그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러시라이프], 이사카 코타로 , 양억관 옮김, 한스미디어, 2006 [칠드런]..

underline 2023.05.11

[밑줄] 일이 손에 안 잡힐 때는 빨리 퇴근하는 게 가장 좋다

2006/09/11 23:29 ... 일이 손에 안 잡힐 때는 빨리 퇴근하는 게 가장 좋다. 마음이 불안하고 수런대는 병사에게 총을 쥐어준들 어디를 어떻게 노리고 쏘아야 할지 모르니까, 후방으로 전출시키는 것이 다른 병사를 위해서도 좋다. 회사에사도 그건 마찬가지다. 나는 정각 여섯시가 되자 서류를 정리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작 한번 빠르군." 건너편 자리에서 안경을 낀 선배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게 할 일이 많은 것과 내가 빨리 퇴근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기분 나빠한다. 반사적으로, 아버지 문병을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나이기에 말이 나온 김에 진짜 문병을 가기로 했다. 예언 성취는 이런 불편한 마음에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 [중력 삐에로]중에..

underline 2023.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