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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 고이케 마리코

flipside 2023. 6. 2. 20:19

2008/04/21 01:27

 

[책을 읽고 나서]


[아내의 여자 친구]에 이어서 나온 국내발매 고이케 마리코의 2번째 단편집. 이번 단편집에는 4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한 편 한 편 완성도가 높아서 금방 읽게 되었습니다. 표제작 "소문"의 경우 뒷표지의 카피("순진무구한 얼굴로 우리 인생에 찾아온 재앙")를 읽고 당연히 노나미 아사의 [죽어도 잊지 않아]처럼 억울한 소문으로 고통받는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고이케 마리코는 소문의 피해자인 다마요의 비밀스런 놀이로부터 소설을 시작합니다. 간병인을 죽였다는 억울한 소문을 듣고 있는 주인공은 아래 옮겨적은 것처럼 이전에 간병해준 노부인들의 집을 몰래 들어가보는 취미에 끔찍한 상상을 하며 가슴을 설레하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 무엇 때문에 이런 놀이를 계속하고 있는지 다마요는 스스로도 잘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그렇게밖에 말 할 수가 없다.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유복한 노인들은 대부분 생황이 매우 규칙적이다. 그녀들이 스스로 정한 생활의 리듬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면 갑자기 병이 났거나 아니면 죽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고 두 경우 모두 다마요의 비밀스런 놀이에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다마요는 이러다가 언젠가는 꼭 한 번 침입한 집의 침실에서나 혹은 복도 한구석에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는 노부인의 시체를 발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차갑게 식어 누워 있는 시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얼마나 흥분이 될까. 침실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드레스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보다도 훨씬 재미있고 훨씬 마음 설레는 발견, 그것은 바로 시체일 것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럴 때 마다 다마요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강렬한 엑스터시 같은 것에 사로잡혀 나른하게 눈을 감는 것이었다. ...



거기에 다마요를 엿보는 이웃집 대학생이 얽히면서 "소문"의 이야기는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가고 결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외에 다른 3편, "팽이 멈추기", "재앙을 부르는 개", "쓰르라미 동산의 여주인" 모두 같은 식으로, 다소 초현실적인(하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 "재앙을 부르는 개"를 빼고는 소설이 예기치 못한 방향(살인)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런 식의 전개가 갑작스럽지 않고 번역자 말처럼 "독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은근히 살인을 이해하고 납득하게" 만들기 때문에 독자는 그러한 과정에서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표제작과 함께 "쓰르라미 동산의 여주인"이 주는 묘한 매력이 맘에 들었는데 영상화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고이케 마리코 팬에게는 적극 추천입니다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끝난다고 해서 일반적인 의미의 반전을 담은 추리소설류는 아니니 참고하세요~




[서지정보]


제목 : 소문
원제 : うわさ(1996)
지은이 : 고이케 마리코[小池真理子]
옮긴이 : 오근영
출판사 : 대교베텔스만
발간일 : 2007년 09월
분량 : 318쪽
값 : 8,500원




p.s. 번역본과 원서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