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19 23:03
"언젠가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나네요. 왜 뱀이 껍질을 벗으려는지 알고 계세요?"
"껍질을 벗는다라면...?"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생명을 걸고 하는 거래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나요. 그레도 허물을 벗으려고 하지요. 왜 그런지 아세요?"
혼마보다 먼저 타모츠가 대답했다.
"성장하기 위해서죠."
후미에는 웃었다.
"아니요. 열심히 몇 번이고 허물을 벗는 동안 언젠가는 다리가 나올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래요. 이번에야말로 하면서요."
"별 상관도 없는데 말이죠. 다리 같은게 있든 없는 뱀은 뱀인데."
후미에는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뱀의 생각은 다른가봐요. 여기까지가 제 남편의 말씀. 지금부터는 제 생각인데요. 이 세상에는 다리는 필요하지만 허물을 벗는데 지쳐 버렸거나, 아니면 게으른 뱀이거나, 방법조차 모르는 뱀은 얼마든지 있다고 봐요. 그런 뱀한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거을 팔아먹는 똑똑한 뱀도 있는 것죠. 그리고 빚을 져서라도 그 거울을 갖고 싶어하는 뱀도 있는 거고요."
[화차] 중에서, 미야베 미유키 | 박영난 옮김, 시아출판사, 2000
이 작품은 정말 두말할 나위 없는 걸작이다. [인생을 훔친 여자]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오기도 했는데 역시 독자의 반응은 없었나 보다. 촘촘하고 완결성 높으면서도 사회문제를 쉽게 지나치지 않는 고른 장점으로 가득한 책이 안팔리는 이유는 뭘까? 이 책만 잘 팔렸어도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작품이 쏟아져 나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