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27 11:00
[책을 읽고 나서]
지금까지 스티븐 킹의 단편집은 정식계약을 거치지 않고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 [옥수수 밭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이 제일 기억에 남았지만 몇 편 실리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는데, 이렇게 단정하게 20편의 단편이 묶여 나온 것이 스티븐 킹의 팬으로 무척 반가웠다.
한 두 권으로 이뤄진 장편을 몇 권씩 내놓은 작가다 보니 - 내가 읽은 가장 긴 스티븐 킹 소설은 두꺼운 3권으로 분책되어 나왔던 [불면증]이 아니었나 싶다 - 기껏해야 30-40쪽 되는 단편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 갈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단편이 더 재미있다는 생각이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롯], [옥수수 밭의 아이들]이 주는 공포는 여전하고, 외계존재에 대한 공포를 그린 [나는 통로이다], 일반적인 소설같지만 결말부분에서 끔찍한 이야기를 통해 반전을 시도하는 [꽃을 사랑한 남자]나 [딸기봄] 같은 소설은 그의 장기가 잘 드러난 작품이며, 기괴한 주술의 세계를 현실의 기계와 잘 결합한 [맹글러]를 읽다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 작품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공포감도 없고, 갑자기 엄습해오는 두려움도 없이 단지 쓸쓸한 느낌을 주는 [사다리의 마지막 단]이라는 짧은 - 세어보니 10장밖에 안된다 - 단편인데 그의 대표작이라고 꼽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아마 그동안 나온 해적판 작품집들에서는 이 작품이 실리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될 만큼 스티븐 킹 소설답지 않다 ^^)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는 많이 봤지만 그의 소설이 주는 무게감 - 책의 분량 ^^ - 에 주춤했던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손에 집에들만 하다. 우선은 [금연 주식회사]로 시작하길 권한다. 그의 매력이 남김없이 발휘된 작품인데 재미도 있도 재치도 있으면 서늘한 공포를 주는 것이 스티븐 킹 소설답다.
[기억에 남는 구절]
짐은 바닥에 누운 채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화물 열차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형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 그가 말했다.
그때 얼굴이 변했다. 얼굴의 각 부분들이 한데 녹아내려 어리론가 달라가는 듯 했다. 눈이 노랗게 변하면서 무섭고 사악한 미소가 그를 내랴다보았다.
"다시 돌아오지, 짐." 차가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리고 사라졌다.
- [가끔 그들이 돌아온다]
[서지정보]
제목 : 스티븐 킹 단편집
지은이 : 스티븐 킹
옮긴이 : 김현우
원제 : Night Shift(1978) [실려있는 작품 원제 : • Jerusalem's Lot • Graveyard Shift • Night Surf • I Am The Doorway • The Mangler • The Boogeyman • Gray Matter • Battleground • Trucks • Sometimes They Come Back • Strawberry Spring • The Ledge • The Lawnmower Man • Quitters, Inc. • I Know What You Need • Children Of The Corn • The Last Rung On The Ladder • The Man Who Loved Flowers • One For The Road • The Woman In The Room]
출판사 : 황금가지
발간일 : 2003년 11월
분량 : 576쪽
값 : 12,000원
[p.s.]
- 각 작품의 발표연도를 실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값이 10,000원 이하였다면 바라지 않았을 텐데 ^^
- 스티븐 킹 전집에는 모두 똑같은 김성곤 교수의 해설이 실려있는데, 단편에 대한 아무런 분석이나 설명도 없는 해설이 무슨 의미인지?
- 찾아보니 [사다리의 마지막 단]이 단편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그 사람도 이 작품이 제일 맘에 들었단다. 시간/공간을 뛰어넘는 공감대 만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