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영 10

살육에 이르는 병 | 아비코 다케마루

2007/07/08 13:20 [책을 읽고 나서] 지난번 [미륵의 손바닥]이후 2번째로 읽게 된 아비코 다케마루 소설. "충격적인 결말을 확인한 순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문구를 보고 당연히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를 떠올렸지요. 두 작품을 비교한다면 역시 [벚꽃...]쪽의 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네요. 하지만 시간 단위를 좁혀가면서 이야기가 점점 조여드는 듯한 느낌을 주는 구성이나 매끈하게 이런 트릭을 구성해 낸 자체에는 감탄했습니다. 요즘에 이런 트릭의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을 쓰려면 핵심 이야기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네요. ^^ 어떤 사람에게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겠지만, 개인적으로 "19세 미..

book 2023.06.01

편지 | 히가시노 게이고

2007/02/11 17:40 [책을 읽고 나서] 지금까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대부분 손에 잡은 그 순간부터 마지막장까지 계속 읽었다. 작품의 소재를 떠나서 이처럼 흡입력 있게 독서에 몰입하게 만드는 실력은 정말 대단한데, [편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간 중간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과 주인공이 겪는 고통, 갈등에 공감하게 되어서 시간 가는줄 몰랐다. 좀 거창하긴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도 하고 - 내게 형이 있어서 더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 범죄와 처벌에 대해 여러가지로 곰곰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추리소설을 기대한 히가시노 게이고 팬이라면.. 흐흠... 할지도 모르겠지만, 넓게 보면 이 작품 또한 사회파 추리소설의 세례를 받고 있으므로 큰 실망은 하지 않..

book 2023.05.31

[밑줄] 존재한다는 것은

2010/10/25 13:05 "사람은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래서 무의식의 둔감함보다 의도된 악의 쪽이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몰라.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은 아직 아린애라고 할 수 있어." [나전미궁]중에서, 가이도 다케루, 권일영 옮김, 예담, 2010 마지막으로 읽었던 [제너럴 루주의 개선]의 기억이 가물가물했던터라 시라토리와 히메미야 콤비에 적응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역시 이런 시리즈는 몰아서 읽는 것이 좋은 듯 ^^ 이전 까지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하고 그것을 유머와 개성넘치는 캐릭터를 통해서 잘 전달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무래도 [바..

underline 2023.05.18

[밑줄] 눈동자가 흔들렸다고 해서

2010/05/19 23:38 ... 처음 사복형사가 되었을 무렵, 치카코는 경찰서 내에서 취조의 달인이라 불리던 선배와 한 해가량 책상을 마주하고 지낸 적이 있다. 자백을 받아내는 데는 최고라 할 만한 그런 취조의 달인은 어느 경찰서에나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인데, 대개는 산전수전 다 겪어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선배 남자 형사들이다. 그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생한 사람답게 처지가 곤란한 사람에게 자상했다. 여형사는 미숙하고 수사에 큰 도움이 안된다는 풍조가 지배적이던 당시의 형사실 안에서 가급적이면 치카코를 편들고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그 달인이 가르쳐준 것 가운데 치카코가 제대로 익힌 게 딱 하나 있었다. 취조실에서 상대하는 피의자의 눈이 불안하게 허공을 더듬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자기 이야기의..

underline 2023.05.18

[밑줄] 그래서 야쿠자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거야

2009/06/27 09:09 ... 하시즈메는 바로 칼날을 뽑아 내 턱 아래 들이댔다. 살짝 통증이 왔다. "다시는 그따위 짓 하지 마." 하시즈메가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내가 왜 널 죽이지 않는지 알아? 야쿠자가 누군가를 죽일 때는 자신보다 상대가 잃는 것이 많다는 손익계산이 있기 때문이야. 세상 사람들이 야쿠자를 두려워하는 것도 그 손익계산이 되기 때문이지. 야쿠자와 서로 죽인다 해도 상대편아 훨씬 손해거든. 슬퍼할 부모가 있고, 보복을 두려워할 마누라가 있고, 길거리를 헤맬 자식이 있고, 멍청한 짓을 했다고 꾸짖을 친구가 있어. 그래서 야쿠자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거야. 하지만 넌 어때? 지금 널 죽여봤자 내가 너보다 잃을 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underline 2023.05.16

[밑줄] 나한테 딱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니?

2008/10/14 23:59 "네코타 선배, 정말로 총간호사장이 되려고 생각하신 거예요?" 하나부사가 물었다. 네코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내가 총간호사장이 되려는 게 이상한가?" "그렇지는 않지만, 왠지 그런 자리와는 인연이 먼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째서? 나 말고 할 만한 사람이 없잖아. 도조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간호과의 간호사 200명을 이끌 수 있는 인재는." 네코타가 슬쩍 웃었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래도 너한테만은 진심을 얘기해 줄게. 총간호사장이란 자리, 편할 것 같지 않아? 다른 사람들한테 지시만 내리면 되니까. 나한테 딱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니?" 하나부사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은 늘 이런 식이다.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

underline 2023.05.16

[밑줄] 그러면 무엇이 지도가 할 일인가

2008/06/14 11:06 ... 그러면 무엇이 지도가 할 일인가. '차폐'(遮蔽)와 '과장'(誇張) 이 두 가지 단어면 충분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저 혼자의 의견이 아니라 면면히 이어져온 지도의 역사를 말씀드리는 것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지구상에서 지도를 사용하는 사람은 주로 도련님이나 그 부친 같은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 예를 들면 새나 벌, 또는 어떤 보행성 동물들처럼 환경을 늘 입체나 공간으로 파악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이런 것을 유클리드적 인지라느니 하는 거창한 말로 바꿔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요). 결국 인간의 경우에는 자기 주위의 환경을 그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통해 파악한다는, 이른바 현실의 풍경 이외에도 '..

underline 2023.05.15

[밑줄] 그냥 그렇게 되는 거야

2007/07/15 12:45 ... 그리고 한동안 이야기하다 보니 모모코의 '어째서'냐고 묻는 질문공세가 오늘 밤에는 드디어 호호 아줌마에까지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오늘 밤은 호호 아줌마가 아기 돌보는 일을 맡았는데, 그만 작아져 버려 큰일이 났다는 이야기를 읽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 호호 아줌마는 왜 작아지는 거지? 어째서 또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야, 하고 묻던걸." "그 질문은 나도 받았어. 처음에." "뭐라고 대답했어?" "그냥 그렇게 되는 거야, 라고." "모모코가 그 대답으로 넘어갔어?" "그랬어." "이상하네. 내겐 자꾸 꼬치꼬치 캐물었어. 그거 병이야? 나도 작아지는거나 하는 거야? 하면서." "그건 이야기하는 기술의 차이야." 내가 뻐겼더니 아내는 진짜로 약올라했다. ..

underline 2023.05.13

[밑줄] 쓰는 글이 허술해지는 프로세스

2007/06/06 10:19 ... 딱딱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라 해도 그걸 생업으로 삼은 이상 일종의 인기인이나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 그게 요즘 세상이다. 옳고 그름이나 진실과 거짓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호감을 주는가, 얼마나 눈길을 끄는가, 얼마나 돋보이는 존재인가로 먼저 평가되고 만다.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인간이란 재미있는 동물이다. 예민한 상태 자체를 즐길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처세를 위해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타협도 하게 된다. 적당히 예민하면 용서가 되기 때문이다. 쓰는 글이 허술해지는 프로세스는 요약하자면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름 없는 독] 중에서, 미야베 미유..

underline 2023.05.13

[밑줄] 나는 원석(原石)을 보는 거야

2006/07/14 23:12 미야베 미유키-용은 잠들다. ... 그러곤 나는 원석(原石)을 보는 거야, 하고 말을 이었다. "마음속에 잔뜩 숨겨져 있는 원석 말이야. 그 사람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원석. 그것만으로는 완전하지 않지. 그 사람이 그것을 꺼내 갈고닦지 않으면. 전에 사에코란 여자를 스캔했을 때는 그걸 이야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사카씨가 내내 그 사에코 씨 문제로 괴로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야. 그건 아주 옛날에 정리됐고, 이젠 갈고 닦거나 꺼낼 일도 없어진 원석이었던 거야." ... [용은 잠들다] 중에서, 미야베 미유키, 권일영 옮김, 2006 위에 블로그에 ozisang님이 쓰신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읽어본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순서를 정해 본다면 [화차] > [이유] ..

underline 2023.05.10